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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중점 ㅣ 나비클럽 소설선
이은영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12월
평점 :
“나는 절망감을 안추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놈은 오늘도 나를 따라왔다. 아니, 남들이 봤을 땐 내가 들고 온 것이었다.”
면접 대기 장소의 냉막한 풍경도 대단한데, 의자가 따라 온 면접자가 등장한다. 의자라는 사물이 인간을 향한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공포의 소재로 사용되는 작품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그 낯설음이 선뜩했다. 제목의 ‘사형을 당해야 할 의자’는 이 의자임에 틀림없다.
분명 면접을 보러 간 여자는 잠시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문장들 속에 머물더니 ‘면접관이 보는 앞에서 의자에 올라가 목을 맸다’고 하여 멍하니 놀랐다. 인간을 죽이는 의자구나... ‘사형’이란 조금은 불편한 표현을 선택한 이유를 알겠다. 이 사건을 밝히는 내용인가 싶었는데 중점은 재빠르게 옮겨 간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 속에 내버려진 의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간이 의자에게 칠한 마음의 독성 물질이 어디까지 퍼질 수 있는지.”
저자가 모아둔 풍경 속의 의자들은 내가 가졌던 이미지와 아주 다르면서도 나도 이미 알던 것들이었다. 단지 인간의 의지와 행동만이 보였을 뿐, 그 의자에 앉았던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의자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상상을 하지 못했다.
의자에 앉아 반성하는 벌을 받던 이들의 마음, 의자 위에 올라가 목을 맨 어쩌면 수많은 이들, 그리고 그로 인한 원망을 받아 내는 의자들. 의자에게도 복수심이 생겨날 수 있을까.
“의자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 그걸 자살 도구로 이용한 건 인간이잖아. 애초에 의자를 만든 것도 인간이라고.”
“의자를 발명하도록 인간의 상상을 유도한 건 의자가 가진 본질이자 심상이야. 인간의 지각을 뒤흔드는 생산적인 자극이 있었다는 거지.”
의자와 같은 무생물이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을 받으면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오빠, 언제부터인가 의자에 대해 경고하며 곁에 머무는 석희(席犧 자리 석 희생 희), 그리고 집 안의 의자들이 모두 이상해진다는 걸 깨닫기 시작하는 나.
인물들을 차례로 의심해보다 어느 의자가 살의를 가진 의자일까 고민해보다, 뜻밖의 전개에 소름이 싸악 끼쳤다.
“여은아 (...) 넌 말이야... (...) 의자에서 태어났어.”
의자에서 태어난 동생은 아무리 유기해도 집에 돌아왔고, 마물의 존재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긴다. 죽여도 죽지 않고, 자신이 싫어하게 된 주변인은 죽거나 크게 다치게 된다. 그런 사건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주변에 의자들이 많았다.
20년 마다 오빠가 위험해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까...
의자인 동생은...혹은 의자라고 믿고 있는... 의자에 갇힌 동생은... 아니 의자는 사형을 당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