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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치킨은 옳을까? - 열두 가지 음식으로 만나는 오늘의 세계
오애리.구정은.이지선 지음 / 우리학교 / 2021년 11월
평점 :
“먹는 것이 곧 자신이다We are what we eat”란 말이 익숙하신가요. 20년 전 이런 구호에 반대하는 이들은 “사랑하니 먹는다We love animals so we eat them”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친구가 몹시 화를 내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치킨에 집중한 책처럼 느껴지지만, 표지를 잘 보시면 숨은 그림들 - 음식들이나 식재료들 - 이 여러 개 있습니다. 몇 개나 찾으셨나요? 원하시면 댓글로 알려 드립니다.
알약을 개발하지 못한 인간은 여전히 식재료를 가공하고 요리하여 시간을 들여 음식을 섭취합니다. 식재료들이 우리의 몸과 정신을 구성하고 성장시키고 건강을 유지하지요. 더 나아가 음식은 문화에도 정치 경제에도 전 지구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니 음식 재료와 생산유통과정을 잘 살펴보면 문화, 경제, 사회, 정치,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식재료들에 대해 논의하고 고민하고 음식들의 수많은 목록들을 이미 경험하고 그 맛을 아는 한 편, 같은 지구상에서는 최소한의 음식과 깨끗한 물이 없어 영양실조 상태이거나 아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난한 이유가 우리가 풍족한 이유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투기이익이 누군가의 손해이듯, 우리의 영양과다와 음식물 쓰레기는 누군가의 영양실조와 황폐화된 토양입니다. 자원을 옮긴 것 혹은 빼앗은 것 혹은 훔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이야기를 읽기도 전에 체한 기분이 드는 글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막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이런 구조가 되었는지 잘 살펴서 좀 더 밝은 눈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전혀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옆집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혼자 배불리 먹는 일은 많이 불편합니다.
저자들은 기자 출신입니다. 열두 가지 음식으로 세상을 논쟁적으로 맥락적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니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극히 일부만 소개해두겠습니다. 쉽고 유익한 정보가 가득하면서 아주 쉽게 잘 읽히니 가족 모두가 함께 읽어도 좋은 교양서입니다.
표제 식재료인 닭에 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알던 정보도 있지만 다시 봐도 놀랍고 모르던 내용들은 더 놀랍습니다.
- 세계 가축 약 300억 마리 중 닭이 230억 마리
-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스라엘이 1위입니다.
: 그러니 닭고기와 돼지고기 소비량을 합해야 더 정확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의 순위는 훨씬 더 위일 듯.
- 가슴살만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닭의 품종을 인간이 개발했군요. 너겟의 맛은 공학기술의 맛이었습니다.
- 수명이 5년에서 13년인 닭은 닭고기로 공급되기 위해 40일이면 다 크도록 품종 개량되어 도살됩니다.
- 소비 1위국답게 이스라엘에서는 ‘깃털 없는 닭’을 만들었습니다. 마치 손질이 끝난 듯 깃털이 없이 살아 있는 닭... 살아도 산 것이 아니란 것은 닭 얘기였나 봅니다.
- 2003년부터 유럽연합은 배터리 케이지를 새로 생산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2012년부터 산란기 닭은 배터리 케이지에 넣지 못합니다.
- 한국에서는 닭의 사육면적을 1.5배 넓히고 케이지 높이는 9단 이하로 규제하는 시행령을 마련했습니다. 그 외에도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표시 도입, 난각 번호 도입으로 사육 상태 표시.
동물권 운동은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활동일까요. 저는 이 운동 역시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코로나 판데믹은 인간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이루어진 접촉이 신종 전염병이 된 것입니다.
배터리 케이지와 공장식 축산으로 키워진 동물들은 면역력이 약해 세균과 바이러스의 숙주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유통망으로 판데믹은 막을 수 없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 인류의 생활 방식을 바꾸고 동물과 환경이 회복되어야 인간도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왜 부국(富國)의 책임인지는 부자 나라들이 해외에 수많은 농장과 온실을 세우고 자신들이 먹을 농산물을 수천 킬로미터씩 비행기로 수송하기 때문입니다.
해당 지역 - 아프리카 등지 - 의 온실 사업은 그 나라의 부유한 기업이나 부패한 관료나 정치인들의 소유이고, 종자와 비료, 관개 기술은 개발 국가 - 주로 미국과 유럽 - 의 소유입니다.
한국기업은 2008년 마다가스카르의 농지 절반을 99년간 빌리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일로 반정부 시위가 거세져서 정권이 뒤집혔습니다.
이런 행위를 ‘땅 뺏기land-grabbing’이라고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국의 가난한 주민들은 자기 나라 땅에서 나오는 농산물도, 깨끗한 물도, 안정된 연료도 못 쓰고, 판매 수익조차 누리지 못하는데, 이는 그 나라의 부패 정권의 책임일 뿐일까요. '옳은 것'은 치킨이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