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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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이후 재회입니다살다 보면 이런 황당한 일들 없는 것도 아니라연말 핑계로 인성과 이성을 잃어가는 독자로 타석으로 삼으리란 굳은 결심으로 읽었습니다.

 

5개의 단편 소설집입니다계기가 된 사소함들폭력과 애증과 무관심이 하나 같이 무섭습니다누가 내면에 기식하는 이런 것들 좀 다 꺼내서 분리수거해 갔으면... 가끔 그런 헛된 상상을 해봅니다.

 

표제작부터 읽어야겠지요이런 오랜 버릇도 문득 배반해볼까 싶습니다만...

 

1.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무시무시합니다이런 오래되고 다수가 가하는 풍습과 문화라 불리는 폭력은 그 수명이 어떤 계기로 말끔히 다할 때까지 어찌해야 좋을지 개인으로서는 막막할 따름입니다전학을 갈 수 있는 학교도 아니고 삶의 터전인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며 살아오신 할머니가 계십니다.

 

* 무라하치부 마을 구성원 전체가 한 사람을 집단으로 따돌리는 관습

 

끝이 없는 건 무섭지끝이 있다는 걸 알면 어지간한 일은 견딜 수 있는 법이다만.”

 

할머니는 어느 날 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던 시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합니다법정에서 할머니의 변론은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였습니다. 5년의 징역 생활 도중 폐암으로 사망합니다유골은 매장도 못 되고 마을에 버려진 채로 나뒹굴게 됩니다.


 

18년 전의 일이고 이제 손자 료이지가 그 할머니의 유골을 절에 봉안하기 위해 마을에 찾아 옵니다그런데 함께 열차를 타고 온 연인미즈에는 유골을 절에 봉안하는 것을 반대합니다왜 그럴까요아프고 놀란 마음이 음성으로 새어 나올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2. 목격자는 없었다

 

영업 성적이 바닥이던 영업 사원 가쓰라기 슈야가 어느 날 상당히 좋은 실적을 기록합니다그런데 발주처의 주문량을 잘못 기입해서 열 개나 추가 주문이 된 것이었습니다솔직하게 인정할 수 없었던 슈야는 실수를 감추기 위해 발주처 직원인 것처럼 추가 주문 열 개를 자신의 돈으로 구매합니다그리고 귀갓길에 차량 추돌사고를 목격합니다.

 

이후 뉴스에 나온 사건 경위는 자신이 목격한 것과 정반대였습니다가해자인 승용차 운전자가 피해자가 되고 밴의 운전자는 사망한 상태입니다진실을 알리려면 자신이 실수한 것을 설명하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목격한 경위를 제보해야 하는데 알 수 있을까요혹은 제목처럼 목격자는 없는 채로 사건은 잘못된 결론으로 마무리되고 마는 걸까요슈야의 결정으로 어떤 파급이 생길까요?

 

당신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증언하는군요.”


 

당사자가 되고 싶지 않은 갈등의 여지가 너무 분명한 소재라 피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 처한 자신을 상상해보고야 말았습니다. 100명 쯤 대답한다면 어떤 선택이 더 우세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3, 고마워할머니

 

제목과 내용의 괴리가 커서 자꾸만 오싹했습니다재능의 노예로 사는 것도 어린 아이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닌데어머니와도 학교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할머니의 기대와 바람은 거세고. ‘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지경에 이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아이의 감정이 도달한 결론이...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정말 아프고 무섭습니다.



 

4, 언니처럼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네요언니처럼 될까봐 되지 않으려 경계의 날을 세우다가 결국 무리하게 되고 절망 속에서 아이를 학대하게 됩니다서로의 트라우마에 각자 휘둘려서 다치는 이야기... 마음이 칠흑처럼 바뀌는 비극입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도 바로 볼 수 없고 타인의 존재도 인정하지 못하는 경계 분리에 실패한 관계가 어떻게 끔찍하게 충돌하여 망가지는지... 격렬함만큼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5. 그림 속의 남자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그림의 내용들이 과거의 불행에서 시작되었다는 것화가가 경험한 참혹함은 화염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는 그림의 풍경처럼 지옥과 같았다는 것그 까닭을 알아가는 시간이 뜨거운 인간의 내면에 들어가는 일처럼 데일 듯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거대한 사건에 늘 거대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진실은 때론 초라하고 이해가 어렵고 간혹 정말 별 게 아니라서 너무나 사소해서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물론 그 사소한 이유가 원인의 전부는 아닙니다참고 있는데 누가 툭치고 지나가는 우연한돌발적인별 거 아닌 일이 누군가의 감정의 뚜껑을 열어젖히게 됩니다.

 

미스터리 소설의 장치라 그런 것만이 아닐 거라고안타깝지만 현실에서 성립된 수많은 사건들도 이런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을 쓰게 합니다.

 

온통 화끈거리는 열상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읽었는데 서늘한 한기를 한참 느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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