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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교육 수준와 빈부 격차가 극단적으로 심하고, 종교적으로 혼란스러우며 인종 분리와 계급마저 공고한 인도는 어떤 사회일까.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로 인도인들조차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고 살 듯하다. 해외에서 듣는 자국의 보도들이 지극히 자극적이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가 접한 인도 관련 뉴스에도 침착하려 하지만, 범죄의 잔인성과 성폭력성은 경악할 수준이다.
이 책이 인도의 극빈층 아이들 실종사건이라고 해서 겁을 많이 먹었다. 안타깝고 아프고 폭력적일까 두려웠다. 읽다보면 좀 다른 느낌의 초조함이 생기는데, 그건 이야기 속 아이가 너무 어리고 순진하기 때문이다. 9살의 형사물을 좋아하는 자이가 주인공이다. 드라마가 아닌 어떤 현실을 마주하면 도망도 못 가고 망가질 듯해서 어찌나 불안하던지.
나쁜 어른과 착한 어른의 대립과 구원이라는 설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수사를 해서 - 엄청 엉뚱한 면들이 있지만 -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전개라 다른 생각 없이 엄청 응원하며 읽었다. 인도가 아니라도 현실은 갈등이 첨예화되면 아이들을 포함한 약자들에겐 배려와 관용의 여지가 없다.
짐작한 대로 잔인한 면면이 널린 사회,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극빈층의 삶, 가난한 어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 바쁘고, 아이가 사라져도 가출이라 여기고, 남은 시간은 술에 취해 행패나 폭행을 저지른다.
그래도 아이들은 높은 하늘의 별들처럼 총명하다. 특히 형사물을 좋아한다는 계기로 아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실종이아 믿는 자이는 친구들과 탐정단을 만든다. 조사는 역부족이고, 그 사이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사라진다. 이제야 사람들은 불안에 떨지만 보호를 위한 공권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다.
사라진 아이의 부모를 비난하거나, 근거 없는 소문으로 2차 가해를 저지르고, 뇌물이 없는 일은 조사하지 않는 경찰들만 있고, 이유를 모르니 종교가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대립하고, 불안이 커지는 공동체에 사기 쳐서 돈을 벌려는 사이비 종교 사기꾼들도 등장하고... 참...
불안이 얼마나 거세든, 가난한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만 남겨 두고 돈을 벌기위해 나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9살 자이의 눈을 따라가며 읽다보면 장면들이 더 참혹하게 느껴진다. 한 가지 문제가 생기면 그 한 가지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몰려들어 난장을 만드는 환경 탓에 삶은 더욱 암담해진다. 그런 현실을 대표하듯 스모그는 이들의 눈앞을 가리고 있다.
읽기 전 두려움보다는 덜한 결말이라 할 수 있고 답답한 궁금증도 얼마간 해소되었다. 그런데... 범인은 잡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다 읽은 책을 덮고 홀가분하게 일어나지 못하게 묵직한 현실이 남았다. 이야기의 잔상들이 이야기로 사라지지 않는다. 해결할 방법이 없어 꿈만 꿔야 하는 건 아닌지.
“우리 집은 나쁜 꿈으로 가득 차 있다.
엄마는 나쁜 꿈을 꾸고 있고,
나도 나쁜 꿈을 꾸고 있다.
내 꿈에서 루누 누나는,
골든게이트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른다.
누나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새 자타유의 모습이지만,
상처 입고 피를 흘리고 있다.
엄마는 어떤 꿈을 꾸는지 내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걸 보면 무서운 꿈인 것만은 확실하다.
차갑고 외로운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걸 느낀다.
새일까봐,
누나일까 봐 걱정하면서 고개를 든다.
그러나 하늘은 비어 있다.”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을 해치우는 날들,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이 불편해서 여지를 주지 않고 도망갈 장소로 택한 책 속에서 누군가의 현실과 아주 가까울 장면들을 만난다. 인도에서 나고 자란 저널리스트 출신인 영국 작가여서 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방인이 아니면서도 심정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힘.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인도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인터뷰한 저자는, 그들이 유쾌했고 당당했고, 종교적 폭력과, 넝마주이나 구걸을 하게 몰린 가난으로부터도 충분히 회복한 존재들이었다고 기록했다. 덕분에 어른들의 현실과는 다른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의 여전한 밝음과 온화함과 생기가 모두 제거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불행에 집중해서 생기와 미스터리 둘 다를 대부분 놓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품을 즐기기엔 현실이 무겁다. 잠시 검색해본 인도의 어린이 연쇄 살인사건, 실종자들의 숫자가 먼 나라 일이 아닌 듯 다가온다. 보도된 이 숫자가 대표하는 사실은 얼마쯤일지 생각해보는 일이 힘겹다.
표지의 여자아이가 누군지 모르고 읽었고... 마지막 페이지에서 마음이 터지듯 아파왔다.
“우린 오늘도, 내일도, 또 내일모레도 여기서 살아야 해. 당신들은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말들을 하는데, 이건 우리한테 삶이 걸린 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