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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흑역사 - 세계 최고 지성인도 피해 갈 수 없는 삽질의 기록들 ㅣ 현대지성 테마 세계사
양젠예 지음, 강초아 옮김, 이정모 감수 / 현대지성 / 2021년 9월
평점 :
과학사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여전히 수학만 하고 있는 전공 수업들과는 달리 과학의 전체 모습, 관련된 사람들, 시대적 배경과 필요가 사적으로 순서대로 설명이 되니, 왜 이 시기에 이 과학이 필요했는지, 온기라곤 없던 공식들을 연구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니 비교할 수 없이 재밌게 느껴졌다. 덕분에 역사 기록의 가치도 배웠다.
제목이 아주 고혹적인 책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논리적일 듯한 과학자들의 흑역사니까. 그래도 나는 전공자니 과학연구가 얼마나 처절한 실패와 헛발질로 점철되며 이어지는 지를 조금은 안다. 그래서 제목이 재밌기도 하면서 짠하기도 하다.
물리학자인 저자 역시 실패 없이 배울 게 없는 게 과학의 속성이라 하니 단지 우스꽝스러운 과학자들 26명 놀려 먹고 재밌으란 책이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오히려 반전들이 기대된다고 할까. 물론 그 전에 과학자들 역시 여러 인간적인(?) 면모들로 인해 해서는 안 될 끼워 맞추기를 하는데...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에게 우주상수 포기하시라 전하고 싶다.
양자역학의 개념이 아닌 듯도 한 개념이 너무 싫어서 덩달아 닐스 보어 Niels Henrik David Bohr 역시 싫었다. 아인슈타인이 공공연히 양자역학을 싫어하고 도전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이다. 그러다 보어가 죽기 전 날까지 연구실에서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문제를, 그것도 자신이 이미 옳다고 증명된 문제를 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분이 숙연해졌다.
유사한 역사가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과 스타인하트Paul Steinhardt 사이에서 반복되었다. 당대 세계최고의 지성에게서 지적당하고 공공연히 반대당하는 과학자의 심정은 어떨지 잠시 상상만 해본다. 누구 편을 들려는 것은 아니지만, 차곡차곡 성실하게 자신의 이론을 연구하고 증명해온 과학자일수록 연구결과에 오류가 있다거나 완전히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중에 사과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과학자들은 사고방식 상 확실한 물증으로 입증되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신 입증 후에는 누구보다 빨리 혁명적이라 느낄 사실도 받아들이는 면이 공존한다. 이렇게 쓰면 과학자들이 균형 잡힌 이상적인 이들로 보이고 큰 실수나 문제가 없을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 않다. 이론물리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눈 먼 과학, 철학적 성찰이 없는 과학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여전히 유의미한 지적이다. 이 책에서 다룬 독가스를 개발한 하버Fritz Haber의 사례는 이토록 아무 예측도 못할 수 있나 싶은 과학자의 참담한 연구 열정과 결과를 충격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진행중인 형편은... 과학기술이라기보다 공학기술과 이들을 바로 활용해서 이윤을 낼 산업자본의 결착으로 대부분의 연구 영역이 대체된 듯한 분위기라 속사정은 더 복잡하고 우울한 면도 크다. 하지만 미래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 근거는 충분하지 않지만 그런 희망을 다 포기하지 않은 채로 흥미롭고 가독성 좋은 방대한 대중과학서를 무척 즐겁게 탐독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유한하지만 상상력은 세상 전부를 담을 수 있고 발전을 유도한다. 또한 상상력은 지식 진화의 원천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상상력은 과학 연구의 실재적 요소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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