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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사람 ㅣ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왕수펀 지음, 서머라이즈 샤샤오즈 그림, 양성희 옮김 / 우리학교 / 2021년 9월
평점 :
SF 문학의 배경들은 이제 ‘미래’를 상정하지 않는다. 근미래, 초근미래가 흔하고 작품 속 기술들이나 장면이 이미 현실에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산업기술은 그렇게 숨 가쁘게 변하고 있으니 이 소설의 시대 설정 2055년도 남 일 같지가 않다.
공기는 점점 나빠지고 물 사용량 제한 조치도 내려진다. 가장 부유한 52명이 전 세계 자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테러는 1년 내내 일어난다. 핵전쟁이 일어나 한 나라가 지옥으로 변하는 보도의 TV 중계가 나온다.
장르 문학 자체의 설정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왕수펀 작가의 작품들은 처음인데 아이들이 두 권을 주말에 모두 읽은 것만 봐도 그렇다. 몇 년 전만 해도 지구공동체나 우주공동체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익히길 바랐는데, 이젠 뭐 하나 마음 편한 일이 없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행위는 대부분 세상을 망쳤다. 전쟁과 자연훼손을 거듭할 뿐, 세상을 아름답게 지키는 일에는 소홀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무시무시한 경고를 받고 있다. (...) 이 끔직한 현실을 계속 외면한다면 지구 종말은 예상보다 더 일찍 다가올 수 있다.”
SF는 경고와 경종의 문학이다. 알고도 못하는 일이 무수하지만 문제의 시작과 끝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도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아이들이 이야기 속에서라도 선택과 판단의 시작과 끝을 보며 생각해볼 기회를 갖길 바란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어른들이긴 하지만.
말랑해서 아름답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SF이다. 읽다가 대만작가라는 생각을 못할 만큼 편안한 글에 역자를 찾아보기도 했다. 재미도 있고 혹시 관심이 있다면 친절하게 인용된 과학 용어들의 설명을 찾으면 정확한 의미를 배워 볼 수도 있다. (맨 뒤)
인상적인 미래사회의 모습들이 다양하지만 매일 소모되는 감정과 시간이 아깝고 버거운 어른으로서는 그런 감정과 시간 소모 없는 안온한 삶의 풍경이 두 번 생각하고 싶지 않게 부러웠다.
그러나... 보기에 모두가 행복한 완벽한 세상, 유토피아는 강력한 중앙 통제의 디스토피아였다는 폭로가 이어진다. 그나저나 최초의 창조자라고 해서 이미 진행 중인 세상을 혼자 결정하고 파괴해도 되는 건가.
“열 개가 훨씬 넘는 똑같은 유리관에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들은, 분명히 ‘나’였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를 보고는 그 학기가 끝난 뒤에 전공을 바꿨다. 친구들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 A 교수는 이 영화에서 특히 인간이 인조인간을 죽인다는 점이 몹시 안타까웠다. 이 안타까움이 인생의 목표까지 바꿔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
2055년, 스모그, 전쟁 테러 공포로 가득한 지구. 소설 쓰는 샨사, 친구 신야, ‘마지막 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필통을 가지고 전학 온 멍췬
“우주 식민지 프로젝트는 일단 과학자들을 이주시켜 화성 환경을 개선하고, 에너지 자원을 개발해 온전한 생존 환경을 만든 뒤에 사람들을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에너지였다.”
2259년, 화성낙원, M3, 국가행사로 은하 신에게 인신 공양하는 첨단과학의 시대.
“지구인의 운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가 모여 결정되는 거야. 종말이 오지 않는 쪽에 투표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무효표가 많았나 보다. 이제 어쩔 수 없는 것 같구나. (...)”
작가의 첫 SF이란 티가 전혀 안 나게 촘촘하고 유려하다. 뭘 적어도 스포일러이다. 대신 세상에서 가장 짧은 SF소설 프레드릭 브라운 <노크>를 소개한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한 사람이 홀로 방에 앉아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두 세계가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잠식하는지 여러 힌트들을 찾아가며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즐기며 읽으면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다. 자꾸만 끼어드는 현실을 잘 무시하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듯 즐기시길 바란다.
“나는? 나는 누구야? 왜 난 꺼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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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마지막 한 사람이야. 너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