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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포트 - 탈코르셋부터 소수자 차별 금지까지, 기자 4인이 추적한 우리사회 변화의 현장들
김아영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9월에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읽고 저널리스트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존경심을 일부 회복했다. 기막히고 뭐라 말도 하기 싫은 언론의 행태에 대한 소위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페미니즘리포트>도 4인의 기자들이 현장과 기록을 모아 정리하고 분석하여 한 권의 책으로 모은 것이다.
4개의 챕터의 주제를 하나씩 맡아 썼다. 1장은 탈코르셋에 관한 내용이다. 마침 며칠 전 라틴어를 꾸준하게 공부시켜(?) 주시는 이웃 덕분에 코르셋에 대한 어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프랑스어 명사 corset(m.)은 "몸(body)"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명사 cors(m.)에 "작은 것"을 나타내는 프랑스어 접미사 -et를 결합시켜 만든 단어로 "작은 몸(small body)"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cheguebara/222527626063
속옷인 코르셋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착장’에 달라붙은 갖가지 차별적 요소를 짚어낸다. 교복, 화장, 머리길이 등등. 불과 얼마 전 숏컷 논란도 소환된다. 한심한 고정관념이지만 오랜 세월 공고하게 작동된 점이 끔찍하고 여성들이 깊이 내면화하고 사회화된 것 역시 슬프다.
2장은 가장 무겁고 잔혹한 주제인 성범죄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역사 이래 성범죄가 근절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여러 사례들을 통해 범죄의 맥락을 살펴보는 일 역시 시의성과 현실 밀접도가 높아 유용한 공부이다.
젊은 세대는 아니지만 수년 간 한국을 떠나 있던 시기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내용도 많았다. n번방이 악마 같은 놈들이 저지른 별개의 단일 사건이 아니라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예민하게 느끼지 못했던 사회의 모습과 대처를 뒤돌아보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황망하고 부끄럽고 수치심이 든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애쓴 모든 이들과 더불어 우리가 몇 발짝 나아온 거리라고 믿는다.
3장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이다. 할 말이 너무 많다. 다행히 능력이 최우선이고 연봉 차이가 없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있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게 각자 해결해야될 일만도 아니다. 그리고 경력이 중요한 사회에서 여성의 경력단절이 당연시 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넓고 깊은 논의가 필요하고 재빠르고 구체적인 정책 시행이 필요한 주제이다.
4장은 소수자 관련 이슈이다. 여성은 인구의 절반임에도 늘 소수자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비가시적 존재로 산다는 점에서 언제나 소수자이기도 한 특이한 위치를 갖는다. 바로 어제 트랜스젠더 하사에 대한 대전지방법원 판결이 났다.
“오늘의 판결은 차별과 편견의 수렁을 건너는 이정표로, 더 나은 세상으로의 한 걸음으로, 소수자들의 지친 마음에 닿을 희망으로 기억될 것.”
4인의 기자는 매일 소모되고 소비되고 잊혀버리는 기사의 속성과 글쓰기에 대한 고민도 많아 보이고, 제대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제안까지 말하고 싶었던 의도가 느껴진다. 말이든 글이든 생산자 역시 피드백이 중요하고 대화가 귀한 법이다.
덕분에 과거의 우리 모습, 현재의 모습, 미래에 바라고 싶은 사회에 대한 생각을 더불어 해볼 수 있다. 각자에게 중요한 여러 주안점이 있을 것이나,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도 하나 같이 무척 중요하고 기본적인 권리의 문제와 맞닿은 것들이다.
현재도 가치 있는 책이고, 미래의 독자에게도 2021년에 이렇게 진지한 고민을 나누었다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작업이다. 함께 떠오르는 다른 책들이 많았던 특이한 읽기였다. 반복되지 않아야할 폭력과 아픔은 반복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해 기본이자 출발인 차별금지법이 순탄하게 제정되고 시행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