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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SF장르에 대한 애정 고백을 하며 살았다. 한국 SF작가와 작품들이 귀하다는 것이 늘 아쉬웠는데 어느 순간 주목 받는 작가도 작품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초엽 작가의 전작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싶게 생경한 단편 분량이었음에도 무척 설레며 읽었고, 새롭고 재밌는 상상을 시작한 작가를 장편으로 다시 만나 그 세계를 제대로 방문할 수 있길 내내 고대했다.
그러한 애정과 기대와는 별도로 최근 SF작품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이 저하되었다. 즐겁고 반갑게 만날 수가 없었다. 근래 작품들은 배경을 근미래나 초근미래로 잡는 설정이 많았고, 이는 기술과학의 빠른 개발에 기인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기시감과 현실 밀착도가 아주 높아 불안했다. 특히 여름 내내 세계 곳곳이 불타고 물에 잠기는 현실은 디스토피아와 판데믹을 이야기 소재로 즐기는 시절의 종말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보는 것이 현실인지 혼란스러운 엄중한 시절, 그동안 갖가지 주장으로 환경위기는 없다고 했던 이들은 드디어 침묵하는 것인지, 그조차도 위기의 실증처럼 느껴져서 불길했다. 대형 산불들, 폭우, 폭염으로 캐릭터들이 아니라 현실의 사람들이 죽었다. 기후란 단지 불편한 기상현상만이 아니다. 식량을 건 전쟁이란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세상은 망해 가는데, 어른들은 항상 쓸데없는 걸 우리한테 가르치려고 해."
과학은 분명한 답을 내놓았고 상황은 심각한데 사람들은 여전히 빙하가 갈라져서 북극곰이 물에 빠져 죽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뭐가 대수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화석연료도 펑펑 쓰고 쓰레기도 대량생산하고 우주로 놀러갈 계획에 즐겁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살아남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인물들처럼.
“돔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우린 정해진 멸종의 길을 걷고 있어. 설령 돔 안의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도, 그런 인류가 만들 세계라곤 보지 않아도 뻔하지. 오래가진 못할 거야.”
인간이 만들어서 심은 덩굴줄기식물 모스바나는 독성이 있고 전파력이 빨라 지구를 뒤덮을 지도 모를 위험한 존재이다. 더스트 역시 연구소에서 나노 연구를 하던 인간의 실수로 탄생한 인공 물질이다. 어떤 인간들은 더스트에 내성이 있는 다른 인간들을 내성종 실험연구 대상으로 삼아 가두었다.
인류 종말을 초래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활동이다. 제 죽을 길을 이토록 부지런히 마련하는 이상한 생물종으로서 우리는 어쩌다 이런 진화의 여정을 걷게 된 것일까. 어떤 의미인지 무척이나 궁금한 20% 이하의 생물 구성을 가진 80% 이상의 기계 혹은 여전히 인간인 레이첼의 존재와 행위와 연구 동기는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 메시지일까.
저자 자신도 과학을 전공했고 이번 작품에 다룰 식물 분야에 관해서는 원예학을 전공한 부친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 연구처럼 조사하고 분석하고 재구성하고 논리적 결론을 내리고 실험에 영향을 준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고 언급하는 방식의 치밀한 아름다움과 완결성을 갖췄길 기대했다.
정교한 SF는 개연성과 논리로 가득한 스토리 퍼즐과 같아서, 구멍이 보이거나, 논리가 실종되거나, 감정이 폭발하거나, 뜬금없는 사랑이야기가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기대한대로 섬세하게 창조된 멋진 작품이었지만 도저히 분리할 수 없었던 현실의 상황이 문장을 뒤덮고 감상을 흐리게 했다. 존재했던 모든 SF 작품들이 예언서가 되지 않길 바란다.
“지수는 자신이 조금씩 사람들이 가진 어떤 활력에 물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년 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만을 생각하는, 그러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 매일의 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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