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가는 곳 - 바닷속 우리의 동족 고래가 품은 지구의 비밀
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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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노마드랜드>를 펼쳐 읽고 아침에 해외 이민자로서 노마드적 정체성을 가진 <파친코> 작가의 대담을 영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오전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노마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나라 없던 시절의 윤동주의 이야기를 들었다.

 

빅뱅의 순간 이후로 우리는 사방으로 날아가며 멀어지며 차가워지는 노마드 원자들의 잠시 잠깐 결합체일 뿐이기도 하고, 지구 행성에 얇은 판 위에 머무는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더 귀한 시간 동안 장소든 사람이든 긴밀하고 다정한 결합을 이루며 살면 좋겠지만 실상은 불꽃이 명멸하듯 다채롭고 쓸쓸하고 아프고 잔인하다.

 

나도 바다생물 포유류였으면 좋을 텐데, 라고 자신의 진화적 존재를 늘 아쉬워하며 살던 독자로서 어린 시절엔 꿈속에서 함께 자주 여행을 떠나던 고래가 어디서 살고 어디로 가는 지 책으로 만났다.




 

“2010년대 중반에 호주 플린더스 대학의 과학자들이 놀라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은 깊이 잠수할 수 있어서 서식 반경이 심해까지 미치는 향고래 같은 고래의 활동이 전 세계 대기질의 구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했다. (...) 고래는 심해에서 오징어와 크릴을 먹고 배설을 해서 영양 펌프구실을 한다.”

 

: 생물종은 누구나 대기 기질의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것을 예전에 화성탐사에 참여한 지도교수 한 분을 통해 들었는데,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서 생명체의 흔적을 찾자는 의견에 그분은 대기 성분만 조사해도 알 수 있다고 의견을 내었다고 한다.

 

내가 인용한 내용에서 놀란 것은 고래들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펌프를 통해 플랑크톤 번성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이 플랑크톤들은 전 지구적 규모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한다. 수치 비교를 해보면 고래 한 마리는 탄소 흡수에서 1천 그루 이상의 나무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어떤 생물학자들은 기생충과 그 숙주를 총체적 한 몸으로 보야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모든 동물의 진화와 건강은 그들의 외부와 내부의 환경, 둘 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기생충과 숙주 사이에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를 공생이라 한다, 그리고 모든 기생충이 숙주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면밀한 연구를 통해 공생적 상호작용이 한때 생각되었던 것보다 훨씬 흔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수치로 보면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라 미생물들의 공동주거지로 느껴진다.


 

사람의 장 속에 사는 박테리아인 ‘Enterococcus faecalis’의 모습이다

HMP프로젝트는 지난 13일 이 박테리아를 포함해 

인체 미생물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 <사진 : 미국 농무부>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207052115505

 

분석 결과 사람의 몸에 사는 미생물 종류가 1만종이 넘었다. 이제까지 몇백종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측이 무참히 깨졌다. 마릿수로 따지면 1조마리 이상이었다. 인체미생물의 유전자 개수는 인간 유전자의 360배에 달했다. 무게로 따지면 약 2이다. 내 몸속 미생물의 존재감2이나 된다는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환상적이고 또 어떤 점에서는 으스스하다. 만약 우리가 기생충을 통해 보이는 것만이 실체가 아니란 사실, 그리고 결코 그런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면, 그리고 각각의 생명체 속에 죽음과 함께 활력이, 그리고 다양함과 약탈이, 밀어붙이기와 몸부림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 비로소 카리스마의 마력에서 풀려나, 더 큰 배려와 더 넓은 관점으로 자연에 접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의 인식과 통제 밖에 있는 저런 것조차도 귀하게 여기고 그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책 내용은 풍부하고 할 말은 많으니 오히려 쓸 것은 적다. 다만 윤리적 소비는 기대도 안 하지만 제가 쓰고 먹은 것도 제대로 못 버리는 인간종에 대한 환멸에 한참 치를 떤다.

 

이런 분노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니 우아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본질을 찌르는 욕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아는 척 잘난 척 중요한 일 하는 척 다 집어 치우고 제가 만든 쓰레기나 제대로 처리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의 사회적 진화의 목표가 되길 바란다.

 

1. 향고래 (네 마리 동반 표류)

2016, 독일, 슐레스비히 - 홀스타인주

게 양식장에서 쓰던 13미터 길이의 그물, 플라스틱 양동이 조각, 11만 개 이상의 소화 안 된오징어 부리 (고래의 먹이), 그리고 차 엔진 커버.

 

2. 민부리고래

2017, 노르웨이 베르겐

플라스틱 찌꺼기 조각 서른 개, 2미터가 넘는 얇은 비밀 조각, 우크라이나에서는 한떼 통닭을, 그리고 덴마크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운반했던 쇼핑 백(로고가 고래 배 속 위산에도 완전히 용해되지 않았다.) 삼각형 재활용 심벌이 여전히 선명한, 영국 감자칩 워커스크리스프 포장지.

 

3. 향고래 (같은 달에 두 마리가 표류했다)

2008, 북부 캘리포니아

16평방미터에 달하는 한 개의 그물을 포함, 97킬로그램 (건조 중량)의 쓰레기. 인도네시아 수산 회사의 상표가 찍힌 줄과 그물. 확인된 그물의 유형들은 투망, 자망, 새우와 저인망. 다 합쳐서 134개의 그물을 기록함. 폴리우레탄과 나일론.

 

4. 보리고래 (거의 다 자란 고래. 길이 14미터)

2014, 체서피크만, 엘리자베스강

깨진 DVD 케이스 하나, 식도와 위장 내벽에서 DVD 조각 검출.

 

5. 브라이드고래

2000, 호주 케언스

6평방미터 너비에 달하는 플라스틱 봉지, 그중에는 약국 상표가 보이는 비닐봉지도 있다. 그리고 일회용 라이터 몇 개.

 

6. 민부리고래

2019, 필리핀, 시티오 아시난

40킬로그램의 빈 쌀부대

 

7. 민부리고래

1999, 프랑스 비스꺄호쓰

378개의 서로 다른 썩지 않는 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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