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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서 혁신과 창조의 노하우를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8월
평점 :
예술과 감상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다른 여지없이 경험한 시간과 내용의 분량에 가혹할 정도로 비례해서 넓고 깊어지는 분야이다.
여러 번 반복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음악과는 달리 미술은 더욱 그러하다. 꽤나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산책하며 눈에 들어온 풍경을 즐기는 이상으로는 느끼지 못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어쨌든 나는 그렇다.
그러니 한국이든 해외이든 노출되는 작품들만 만나고 시간과 장소가 허락한 전시회만 다니며 내가 만난 제한된 예술품들에 대한 경험만 내내 반복하며 살았다.
그런 전시회들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되자 정보가 거의 없는 창작자들의 현대미술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20세기가 끝나지 전에 만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전은 전시와 참여가 적절하게 섞인 구성이었고 작품의 규모와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이후로 기회가 닿을 때마가 들러 본 참여형(?) 현대미술전들은 적지 않았지만, 딱 일회만 공연하는 연극처럼 작품도 감상도 대체로 휘발되듯 사라졌고 아쉬움에 기록을 부지런히 남기지도 않아 그야말로 기억은 조각조각 나있다. 그 공간에 들어서야 감상이 가능한 작품을 남길 방법도 없긴 했지만.
김태진 저자는 시리즈로 출간하는 서적들을 통해 신뢰가 형성된 분이고 기본기를 착실히 다진 이가 형식과 원칙을 넘어 새로운 주장과 시도를 하는 기분 좋은 도전처럼 느껴지는 이 책을 올해 출간하였다. 늘 그랬듯이 예술작품 전시도록과 예술사, 미학적 논의로 정형화된 내용이 아니라 인문학적 통찰로 만나는 귀한 내용이다.
공간의 붕괴
지각의 해체
권위 너머로
형식 너머로
물질 너머로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의 동력과 의도와 의미를 누가 다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배울만한 텍스트가 반갑고 특히 갑갑한 ‘현상’과 ‘현실’ 너머의 풍경과 사고 영역을 보여주는 내용은 더욱 그렇다. 저자가 표시한 점들을 만나고 여정을 계속하다보면 길처럼도 지도처럼도 보이는 그림을 얻는다.
“야수주의는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대단히 영예로운 지위를 갖게 되었다. 바로 현대미술의 문을 연 예술운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색채의 사용에 있어 화가들마저도 연연하던 어떤 고정관념을 끊어냄으로써, 색채의 무한한 자유라는 선물을 현대미술에 선사했다.”
“세잔이 사진의 등장으로 위기에 빠진 회화를 구해냈다면, 뒤샹은 망막적 회화, 즉 "틀에 박힌 관람 회화"를 거부하고 미술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했다.”
틀 안에서 섞이지 않고 틀 밖으로 나와 새로운 점을 찍어 세상의 경계를 넓혀준 모든 예술가들에게, 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읽었다. 필사를 많이 하면서 천천히 공부하려 했는데 이야기를 들려주듯 술술 풀어 놓은 문장들에 재밌어서 그냥 줄줄 읽었다. 통사를 좋아하는 지라 미술의 발전사를 상세하게 짚어주는 점이 무척 좋았다.
역시 전체적인 흐름을 알아야 개별 작품들도 작가들에 대해서도 이해가 무리 없이 가능해진다. 역사적 필요성을 획득해서 설득력이 높아진 지식들은 노력을 덜 들이고도 기억에 잘 남는다.
입찰자에 지나치게 공감해서 공분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얼른 잊고 싶은 기막힌 작품 소재들도 있지만 이런 별의 별 게 다 예술이라는 것, 책으로 만나도 이렇게 휘둘리는 예술 창작의 힘을 더 실감하기도 한다.
“예술은 자유가 날개짓을 훈련하는 곳이다.” 마티 루빈
이 자유는 창작가의 자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 그래서 예술은 소수에서 다수로 우리 모두의 삶을 대상으로 목적으로 삼는 방향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재미는 기대 이상, 감동도 기대 이상, 완독 후 남는 여운도 기대 이상이다. 예술 작품들에서 독자의 사유를 친절하고 끈기 있게 끌어내주는, 감상에도 창작에도 기획에도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