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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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자산이나 투기로 살아온 삶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소득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다그러나 노동자는 미처 종류를 다 헤아려볼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다한 개인의 삶에서도 노동 조건이 다양하게 변화해가고흔히 말하는 철밥통 직업을 가지지 않는 한 조건은 극히 드물게 개선되고 대부분은 처참하게 나빠진다.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이건 잠시이고 곧 원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껏 뜻을 펼칠 직장을 찾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계산을 꼼꼼하게 해서 소위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는 이들을 한편 안타까워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쫓던 즐거움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당혹과 포기와 좌절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오래 배운 것이 취업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되어 강사자리를 전전하다외국기업 한국지사에서 일하다안정된 직장의 필요성을 뒤늦게 절감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부조리한 조직생활에 좌절했다다시 사기업에 취직해서 밤샘 근무를 격일로 하다 일 년 만에 몸이 엉망이 되었다그나마 계약 사기로 회사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소송에 휘말리자 그마저도 사라졌다.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어떤 일이건 마감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하고 싶었던 공부를 오래하며 취업 최적기를 지났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 것과 같은 세월을 견뎌야했다뭘 그리 잘못 살았을까어제는 서로가 힘들어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거래처 한 곳이 기어이 멈췄다불안이 덮치고 두통이 심해진다앞으로 내가 할 노동의 형태는 무엇일까.

 

그동안 아직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뉴스보도들에 심장이 긁히는 기분이 든다세상의 다양한 분야에는 하청노동자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인구는 줄어든다고 해도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세상이라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은 언제나 보충 가능한 존재들이라 여긴다절박한 이들은 매일 늘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몇 달 전 집단 해고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부당한 해고에 저항하고 있을까다른 분야에 다시 간접고용되었을까. 2018년 화력발전소 산업재해로 사망한 간접고용 노동자 용균씨의 마지막 월급명세서 실지급액은 211만원이었구나용역업체는 311만원이나 가로채 갔구나원청업체 낙하산들인 하청업체 사장들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연간 억대를 받는구나.

 

8시간 업무를 기준으로 계약을 하고 야근 수당은 계산하지 못한다고 하던 내 경험은 이 책의 노동자들도 고스란히 겪고 있다급여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업무타인의 생계지급금을 쥐고 휘두르고 내치는 관리자들과 또 다른 을들세상은 코로나 전후로 나뉜다고 하지만 고용과 노동은 이전에도 지금도 이런 형태가 다반사일 것이고 저항과 노력을 통해 법을 바꾸지 않는 한 미래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런 안전장치도 지금은 없어요도급계약서에 용역업체가 노무비를 전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걸 수는 있어요그런데 그렇게 하는 곳은 없죠.”

 

그런데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나는 새로운 노동 계약을 할 때 이 조건을 요구할 수 있을까할 수 없는 변명을 더 열심히 찾을까낙하산 사장들이 퇴직 수순을 밟듯 챙겨 가는 여정에 하청업체의 운영 형태가 존재하는데이 모든 것이 다 합법이라는데.

 

1998년 파견법이 가진 간접고용의 위험성을 미리 알고서도 기업의 선의를 믿자고 사이비종교처럼 국민을 우롱했다는 걸 이제야 배운다. 2021년까지 모든 정부는 기업의 대변인을 자처했고 파견업체에 유리한 규제 완화를 계속해왔다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말 말고 행동을 보라는 말을 나는 신뢰한다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어떤 법을 발의했는지를 보면 공약을 광고하고 표를 구할 때보다 더 정확히 그 사람이 보인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선풍기와 목장갑을 지급하는 일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쉴 그늘막을 설치하는 일은행 경비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는 일이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고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일인가답답함과 기막힘을 거쳐 분노가 치민다사람들이 절규 하게 만드는 데에는 이 모든 것들이 퇴적되어 한이 되는 오랜 시간이 있었다.

 

모르겠다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숨막힘과 갑갑함이 실은 내 처지를 불안해하는 투사의 감정인지타인의 삶이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제대로 된 인식에서 비롯된 공감인지이 감정은 솔직하다 하더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그 역시 거짓에 다름 아니다피할 수 있으면 다시 적당히 외면하고 희생 없는 응원과 후원만으로 면죄 받고 싶다.

 

중간착취’, ‘지옥도’, ‘원청’, ‘하청이라는 단어들을 세상으로 끄집어내고 기록하고 출간하여 알린 모든 분들의 결심과 노고가 감사하고 존경스럽다덕분에 나처럼 게으르고 비겁한 사람도 그 모든 악행의 배경과 노동 현실을 배웠다이제 나는 적어도 이 단어들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다현실은 분명 좀 더 보이고 때론 고민을 할 것이며 뭐라도 참여하고 싶을 것이다.

 

착취 지옥의 한 가운에 계신 당사자들을 떠올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선 나를 생각한다보이고 느끼는 문제들이 있어도 남들이 해결하도록 빠져나가 산 탓에 여기에 이르렀을 것이다우리는 지독하게 불안하고 견디고 버티려는 힘이 빠져간다국회의원들과 고용노동부 직원들은 어떤 심정인가교묘해지는 착취 행위에 솔직하게라도 대응할 생각은 있는 것인가.

 

김훈 작가님 감사합니다.

이건 잘못이다라고 분노하시는 문장들 틈에서 잠시 긴 숨을 쉬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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