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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사랑 그리고 별
조헌주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평점 :
여름이 공식적으로 다 가기 하루 전, 이젠 이런 이유로도 기분이 안절부절못한다. 어느 계절이든 시간이 가고 나는 조금씩 사라지는 일이 쓸쓸하니 주책없다.
강연이나 책모임, 책과 관련이 없더라도 사람들과 대면해서 토론을 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일을 오래 못해서인지, 이런 책들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는 에세이를 보면 반갑고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서 여행을 다녔는데, 이젠 다른 사람들 무슨 생각하는 지가 궁금해서 에세이에 끌린다. 제목과 표지가 담백한 문장과 내용을 기대하게 한다.
인문 철학 분야의 책을 읽고 33개의 주제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고 저자 자신이 고민한 내용들이 인용문들과 더불어 담겨 있다.
가장 새로웠던 내용은 핀란드에 ‘실패의 날’이 있다는 것이다. 매년 10월 13일에 서로가 실패한 경험을 공유하며 실패를 기억하고 기린다고 한다.
“실패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다. (...) 맘껏 실패하라고 용기를 준다. (...) 실패의 경험들은 삶의 굳은살이 되어 인생의 고통을 무디게 할 것이다. (...) 용기를 잃지 않게 할 것이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알음알음 소규모로 경험을 나누는 다소 사적인 일이 아니라, 대대적인 행사를 한다. 실패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하는 행사이며, 무려 핀란드 국민의 1/4가 지켜보는 국가적인 행사라고 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넌 특별하지 않아, 우리 중 누구도 특별하지 않아, 라고 교육하는 걸 들으며 무척 놀랐는데, 핀란드의 실패 행사는 공식적인 행사라는 점에서 무척 놀랍다. 이런 걸 경험하고 싶어서 여행이 좋았던 오래 전 마음이 생각난다.
전혀 학습된 바가 없는 동양철학은 역시 어렵다. 장자의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사랑의 이야기란 것은 세 번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성인은 모든 시비를 조화시켜 균형된 자연에 몸을 쉬는데, 이것을 일컬어 자기와 만물 양편에 다 통하는 것이라 한다.”
“묵자는 ‘세상에 남이란 없다’란 말로 사랑을 정의했다.”
“만약 천하를 천하에 감추어두면 옮겨질 곳이 있을 수가 없는데, 이것이 영원한 만물의 위대한 실정인 것이다.”
성인의 사람됨이나 사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인가. 텍스트 읽기란 분야별 훈련이 필수라는 생각을 절절하게 한다.
“드문 사람은 세상의 이방인이다. 쉽게 환영받지 못하며, 받아들여지려면 적어도 반세기나 그의 사후에나 가능한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 하지만 그대가 박제가 된 천재로 되더라도 슬퍼하지 말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하라.”
천재로 사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 대화할 상대가 적어 무척 외로울 거란 생각을 한다. 실상 천재이든 아니든 오해받고 미움 받고 비난받는 사람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굴레에 들어선 것처럼 늘 존재한다.
언제나 ‘적’을 만들어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문제는 이들이 권력을 가질 때는 지목된 사람도 가족도 주변인들의 삶마저 망가뜨리니 무참한 노릇이다.
언젠가 총체적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다행이나 당사자가 견뎌야하는 세월을 생각하면 끔직하고 잔혹한 일이다.
“약속이나 맹세가 지켜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지켜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건 우연일 뿐이다. (...) 모든 맹세는 거짓일 때만 가능하다. 모든 맹세는 미래에 살기 때문이다.”
약속과 맹세가 사회적인 질서를 만든 중요한 행위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무척 놀랐다. 내가 읽은 인문 철학서는 인간 세계가 문명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던 작동 방식에 약속과 맹세를 두었다.
물론 완벽하게 지켜지지 못했지만 거짓 약속과 맹세가 짐작보다 많았을 수도 있지만, 타인이 혹은 내가 약속과 맹세를 지키리라는 전제 없이는 무엇도 불가능하다.
약속과 맹세 즉 계약이 모두 사라진 사회는 누구도 제자리에서 멈춰서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의 장소일 뿐이다.
저자만큼 숙고하지 않아서 오독일 가능성도 있으나, 동의하지 않아서 잠시 생각을 톺아볼 수 있었던 반가운 인문 철학 에세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830/pimg_739190168308614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