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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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파리에서 전해온 라이브 강연을 듣고 나는 못 가도 정신은 어딘가로 홀홀 날아 가버린 듯했다사업자 우선 해외출장/여행만 먼저 허가가 난다는 조건이면 창업이라고 하고 싶은 기분이 잠시 들었지만... 그러기엔 삶이 거추장스럽고 무거워졌다.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Les Bergers d'Arcadie dit aussi "Et in Arcadia Ego"

의미: 너희도 나처럼 죽을 것이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던 모든 것들의 실체는 그동안 다른 무엇들로 변해버렸을 지도 모른다그렇다면 기록과 동시에 불멸의 생을 획득한 책 속에 담긴 미술과 역사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훨씬 더 실체성을 가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실체가 분명하지 않았던 탓에다시 말래 고전미술의 실체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전 미술을 향한 신화와 예찬이 더 극적으로 이뤄졌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이자 멋진 말씀이다루브르 <말로의 비너스>는 복원이 이미 가능하며 99%의 확신으로 그것이 실제 모습 - 옷이 흘러 내려 왼손으로 잡으려는 찰나 - 이라 인정하면서도 복원하지 않는다결핍이 인간의 상상력에 더 지극한 쾌감과 예술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브르의 그리스 예술품들은 거의 다 로마인들의 모사품이거나 루브르의 복원품들이다. 처음 알게 되었던 순간에는 무척 놀랐다. 저자 역시 그런 내용을 지적하며서 우리가 보고 감상한 대부분이 짝퉁복제품이고 순백의 대리석은 원래 채색되었던 것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공들여 찬양한 이유는 무엇일까유럽의 지배층이 모두 바보가 아니라면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저자는 고대 그리스가 육체적 파시즘 사회라고 한다즉 아름다움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누드 작품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신의 옷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손쉽게 고대라고 분류하지만 인간 사회는 그 고대로부터 그다지 진화한 것 같지가 않다현대의 육체적 파시즘은 더 악랄하고 노골적이고 특정 지배층의 관심 사항이라기보단 돈을 벌고 싶은 자 누구나의 영업 전략인 듯하다그것이 미모이든 건강이든!

 

우리는 모를수록 혹은 모르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상상력에 죽고 사는 존재들이다이런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는 어디서 창발(emerge)한 것인지 한 때 무척 궁금해서 알아보려 집착했는데……모른들 어떠하리잊고 살았다.

 

양정무 교수는 이 책에서 그늘 밝히기관념 뒤집기신비주의 포장 벗기기인류사의 벌거벗은 모습 전하기 사견에 기반을 둔 거친 요약 를 주요하게 담아내었다.

 

미란 인간의 감정에 광범위하게 관계하기 때문에 이를 단지 몇몇 개념이나 조건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웃는 표정을 통해 살펴보는 문명의 표정은 다빈치가 언제나 표정을 보라!”고 했던 것과 겹쳐 들려서 더욱 흥미로웠다가만히 떠올려 보면 고대 미술 작품 중에 웃는 얼굴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그게 바로 문명의 표정이었다니!



표정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니 표정이 더 풍부해보인다. 


저자가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사를 되짚는 내용은 젊은 시절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고민했지만 어쩐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 나도 그만 생각할래하고 살아온 세월을 뜨끔하게 한다어제만 해도 제국주의의 심장 루브르를 감상하고 있었으니 더 기분이 뜨겁다


일례로 추상미술이 비서구 사회의 야만성의 전시하기 위해 식민주의자들이 문화유산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전시 의도가 더 야만적이라 느낀다.

 

참담한 정복 전쟁 속에서 벌어진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에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유럽은 특히나 예술품의 명작을 가지는 것이 유럽 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예술적 권위를 획득하고 전쟁의 전리품으로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이 효과가 좋았던 역사를 살았다. 그러니 영토확장을 가장 잘 한 황제의 영향력이 유럽 여러 나라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고 현대 유럽의 모습을 규정했다.

 

나폴레옹의 제국주의 시대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거대하게 축조되고 확대되며 전쟁 포로와도 같은 미술품들을 장식하고 채워 넣는 일이 가장 활발했던 시대이다예술만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도량형의 통일은 이때 이루어진다.

 

나폴레옹이 소위 잠시라도 정복하지 못한 영국이 독자적 도량형 단위를 가진다는 것그래서 미국 역시 그렇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전쟁으로 쏟은 피로 사회와 문화와 예술과 학문이 번성하는 듯해 한편 섬뜩하다.


맥락 없이 내가 좋아하는 작품 두 점을 올려 본다


루브르에서 모나리자 맞은 편에 위치한 덕분에 
모든 관심을 빼앗기고 관람객들의 등을 더 많이 보는 애틋한 작품이다.
크기가 엄청 커서 나는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여전히 물병이 몇 개인지도 기억한다.
기회가 있으시면 만나시길
숫자 6의 의미를 생각해 보시길.

내가 아는 가장 슬픈 작품들 중 하나,
나도 많이 울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박물관이 873미술관이 251개가 있다최초의 박물관은 1909년 창경궁 안에 설립된 제실박물관이다.


무척 재밌고 유익하며 반가웠던 내용은 판데믹 속 미술의 역할이다양정무 저자만의 시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새로 만난 미술사책의 반가움을 더한다. 

 

흑사병은 미술의 양식이나 도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무엇보다도 미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자체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흑사병으로 중세 교회의 권위가 약화되고사람들은 의지할 수 없게 된 신 대신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외부에서 누가 나를 구원할 손길이 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구원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그래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제목만은 잘 아는 <데카메론Decameron>*은 흑사병이 퍼진 피렌체에 자가 격리된 남녀 10명이 10흘 동안 계속한 이야기 100편을 모은 것이다즉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사실 형태로 바라보고 이야기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 1351년 죠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단편소설집. 10일 간의 이야기여성 7명 남성 3. deca" 10배를 뜻하는 미터법 단위

 

코로나 판데믹의 우리는 물리적으로 갇히고 넷network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남녀 10명이 아니라 동시접속 수천, 수만명이 가능한 도구를 확보했다. 원한다면 차례대로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시절이 지나서 우리가 틀어갈 역사의 방향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고민 속에 문명사적 고민을 하고 있다면 태어날 것은 무엇일까.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완벽함과 위대함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민과 그것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옵니다.”

 

저자의 생각과 책의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제목 그대로 신비함고상함교양이라는 옷을 걸친 미술을 벗겨 놓은 것이다고약한 편견을 깨면 미술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과 사회 곳곳에 함께 자리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들린다문제는 편안하고 간결하고 시선과 생각은 냉철하고 명료해서 아주 잘 읽히는 멋진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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