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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부
마르틴 쉬르츠 지음, 권오용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세창출판사 서적들의 깊이와 충실함은 읽기에 설레고도 두려운 경험이다. 이 책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해 방해가 거의 없는 아침 독서 일정으로 삼아 읽었다. 5개장으로 구성된 내용이 충실하나 읽기에 곤란할 정도로 어렵지 않고, 주장하는 바가 명쾌해서 예상보다 빠른 완독이 가능했다.
분명 오스트리아 출신 학자의 유럽의 경제 정치 상황과 불평등에 관한 고찰인데, 한국 사회를 해석한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고, 바로 적용하면 좋겠단 내용들이 많이 놀라웠다. 산업 금융 자본주의에게 국경이 사라진지는 정말 오래되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소득’불평등이 아니라 ‘자산’불평등이라는 내용에 경제적 불평등을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구체적인 내용이다. 부동산 자산에 대한 열띤 논쟁이 그치지 않고 현실이 바뀌기보다 나날이 악화될 가능성만 높은 한국 독자들은 더욱 체감할 것이라 느낀다.
“부유함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과도하지 않은, 마땅한 부유함이 있는 것일까?”
자산에 대한 믿을 만한 자료를 세계 각국에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행정등록 되지 않는 삶이 거의 불가능한 한국인이라서 즉각적인 느낌이기도 하지만, 자산가들은 탈세를 목적으로 여러 편법/불법으로 등록은 고사하고 있는 자산도 감춘다는 공공연한 비밀과,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로서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시혜를 받고, ‘공짜’를 탐낸다는 시선을 받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라, 고 요구하는 공고한 사회시스템을 생각하면 당연한 지적이기도 하다. 문서만이 아니라 각종 심사를 거쳐 가진 자산을 샅샅이 보고해야 하니까.
그러니 부의 ‘과도함’Überreichtum*을 측정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측정해야할 지가 불명확해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능력주의 사회를 찬양하고, 동시에 상속재산을 통해 명백히 모순되는 시스템이 운용되고 있는 점도 평등과 공정에 대한 복잡한 이율배반을 실감하게 한다.
* Überreichtum : 저자가 만든 신조어. Über + reichtum : 과도 + 재산
현대의 슈퍼리치들 - 2019년 기준 자산 10억 달러(약 1조 1440억 원) 이상은 2,153명이다. 정말로 이들의 부가 당사자의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인가. 이들은 자산만 보유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협상을 좌우하고, 안전, 자유, 독립성을 정서적로도 부족함 없이 누린다.
부의 극단적인 집중은 해소가 될까. 날카롭고 명쾌한 지적은 무척 인상 깊었다. 해법에 있어서는 내가 가진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깊이가 적어 더 그렇겠지만 저자가 제안한 것이 유의미하게 성사되는 장면들을 쉽사리 상상해내지 못했다.
교육은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 개인의 재산 보유에 상한선을 두거나, 상속 세율을 높이는 방법은 저항이 거세어 실효성이 부족할 지도 모른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부자들의 자산을 명확하게 파악한 자료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소수의 손에 집중된 너무 과도한 부는 이미 오래전에 사회를 갈갈이* 찢어 놓았다. (...) 과도한 부자들에 대한 이미지와 우화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 노숙자, 난민들에 대한 현실성 있는 이야기가 제시되어야 한다.”
* 갈갈이: ‘갈가리’의 비표준어. 발견!
여러 가지 이유로 미래가 불확실해진 시절을 살면서 가난이 모욕의 근거가 되지 않는 사회를 바라는 독자로서 이 책 덕분에 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가 주관하는 모임에서 철학자와 문학가들을 만나 진지한 담론을 나누는 풍경에 초대받은 것처럼 즐거웠다.
특히 경제학자이면서 심리학자인 저자의 특성이 잘 드러난 주장과 담론은 새롭고 흥미로웠다. 읽다 보면 가난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가스라이팅이 정치의 영역에서 문화수단을 이용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하는 무서운 기분도 든다.
“부자들에게 유리한 감정정치가 과도한 부자들의 높은 사회적 지위에 기여했다. 감정정치의 측면은 매우 과소평가되어 왔다. (...) 질투, 탐욕, 또는 분노와 같은 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 감정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없다. 21세기의 과도한 부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특권을 정당화할 때 자신들이 미덕을 갖고 있음을 공공연히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