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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노부토모 나오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시공사 / 2021년 8월
평점 :
부모가 치매를 앓는 상황에 대해 자식이 보고 겪은 병상일기와 다큐멘터리, 자전소설, 에세이가 드물지 않게 보입니다. 제 지인들, 친구들이 먼저 겪은 일이기도 하고 저도 남의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 늘 두렵지만 공부도 준비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읽게 됩니다.
“아무래도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것 같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니 더 피할 수 없어진 노후의 모습이기도 하고, 나이와 관계없이 발병되기도 하니 점차 더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대비해야할 듯합니다. 특히나 개인에게 가족에게 전담시키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가 세심하게 마련되고 운용되길 바랍니다.
대표적인 장수국가인 일본에서는 어쩌면 더 흔한 풍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령의 부모님이 고향에 사시고, 자식은 도시에서 직장 일을 하는 가족 구조입니다. 발병이 되었다고 해서 당장 일을 그만두고 간병을 시작하기도 힘든 형편입니다.
“치매진단을 받은 엄마를 93세의 아버지에게 떠맡기고 이렇게 떠나는 게 정말로 잘하는 일일까. (...) 버스 안에서도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부끄러울 만큼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부모의 모습을 촬영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 부럽습니다. 이전에 저자 본인이 40대에 유방암에 걸린 경험을 다큐멘터리 <가슴과 도쿄타워: 나의 유방암일기>로 제작해서 방송에 내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 부모님과 만나는 일상을 20년이 넘게 카메라에 담아 왔다고 합니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기획을 따로 해서 영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참 다행이고 그래서 아마 시청자들의 반응이 대단했을 거라 짐작해봅니다. 치매를 겪는 모습도 각자 다 다르겠지만 제가 책을 읽듯 영상으로 배우고 준비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겠지요.
“카메라를 들고 자세를 취하면서 자연스레 ‘객관적’인 시점을 취하게 된다. 그러면 딸의 시선으로 볼 때는 ‘비참하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일이 의외로 다르게 다가왔다. (...) 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점차 ‘왠지 모르게 이 두 사람 훈훈하다. 좋은 캐릭터구나.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었다.”
책 제목과 일러스트가 온화하고 따스한 것도 참 좋습니다. 괴로움과 슬픔은 대단하겠지만 병 자체가 된 것이 아니라, 병을 앓으며 사는 이전과 같은 존재로서의 삶을 더 설명할 필요 없이 담아낸 것만 같습니다.
다행히 저자는 아버지가 곁을 지켜주시고, 데이케어센터의 도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이 없어서인지, 센터장과의 대화가 무척이나 안심이 되고 뭉클합니다.
“내가 뭘 해야만 한다고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 지금도 따님은 충분히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 우리를 부모님과 만나게만 해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충분하다’는 말이 얼마나 의지가 될까 짐작해봅니다. 몇 달 전에 대한민국의 치매국가책임제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살펴보았는데 다른 변화가 있는지 잠시 또 둘러봅니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이나 보도자료로 가셔서
'치매'을 입력하시면 관련 정보를 모두 찾으실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비용 부담에 대한 내용부터, 중앙 정부만이 아니라 지자체별로 협력하는 정도가 다 다르고,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기업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치매 관련주에 대한 정보가 엄청나게 업데이트 되고 있는 것도 한국 사회의 일면입니다.
당사자들에게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아쉬운 면면이 있더라도 제도가 마련되기 이전보다는 분명 도움을 받은 이들이 늘었을 거란 생각에 조금은 마음을 풀고 긴 숨을 쉬어 봅니다.
멀게 느껴지는 정책으로 존재하지 말고 곳곳에 접근 가능한 치매센터들이 최대한 잘 활성화되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부디 실질적인 예산 책정과 고용 인력 확보에 차질이 없길 바랍니다.
인간적이고 따스하고 긴밀한 사적인 내용을 담은 책을 차분하게 읽고 생각은 내가 사는 현실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망설이지 말고 뭐라도 하고, 확실하게 치매 진단을 받으면 결과를 인정하고, 최대한 오래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상황을 바꿀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치매를 앓는 이도 가족도 친구도 지인들도 다치고 상처 받지 않고 관계를 이어나갈 현명한 제안이라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뜻밖에 개인으로서의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간혹 고민을, 사는 일을 간명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생각을 튼튼하게 단단하게 하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