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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김이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6월
평점 :
단편소설 읽는 재미가 늘어 가는지라 단편집은 이제 즉각 반갑다. 목차를 보시고 아시는 작품도 있을지 모르나 나는 모두 다 처음이라 더 좋았다.
2016년 가수 겸 배우인 장근석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초청작) 원작이 동일한 제목인 [위대한 유산]으로 표제작이고, [눈물은 오래 전에 말라버렸다]는 <소설 문학> 계간지에 실린 작품이라 한다.
저자의 이력도 흥미로운데, 일본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2013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유산]으로 등단한 작가이며,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행정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당연히 표제작부터 읽는 버릇이 있는데, 부모와 돈, 이라는 소재라 미뤄두고 다른 작품들도 살펴보았다. 분단과 정치 망명자의 삶, 민주화 시대 지역 운동가 아내의 삶, 샐러리맨의 애환, 탐욕으로 파멸하는 소시민, 무속의 세계……. 쉬운 소재도 무겁지 않은 주제도 없을 듯하다.
덕분에 고민을 거두고 다시 표제작 [위대한 유산]을 읽는다. 작가가 실제로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하니, 이 작품 자체가 위대한 유산인가 싶기도 하다.
만화가가 되고 싶은 주인공, 그런 아들을 위해 돈을 모은 아버지,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기까지의 과정이 긴장감 가득하고 장면들이 강렬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면 빌딩 세울 생각에 골몰하는 자식들이 주인공의 형제들로 등장한다. 다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부모의 죽음에 기대를 앞세우는 이들에게 호의를 가질 이유도 없다.
저자에게 관심이 생겨 전작 <가토의 검>을 찾아보았다.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추리스릴러 장르라니 조건 반사처럼 끌린다. 영화는 9분이라 주제를 아주 집중적으로 영상으로 다뤘을 듯하다.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눈물은 오래 전에 말라버렸다]는 평소에 특히나 더 관심을 두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라 아는 바 없이 배운다는 생각으로 따라 읽었다. 태어난 곳은 내 선택이 아닌데, 주어진 것들로 삶이 더없이 위험해지고 힘겨운 이들에 대해, 어쩌면 기후난민이 곧 닥쳐 난민이 대량 발생할지도 모를 시대에 무거운 마음으로 탈북 후 삶을 견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는 오래 전 시대상이 눈앞에 다가오는 어찔한 기분으로 역시 쉽지 않게 읽었다. 나만 자리를 옮겼을 뿐 여전히 머무르는 이들이 있을 터인데 과거 일처럼만 여겨 너무나 죄송하고 아프기도 했다. 이 단편의 제목을 다른 작품으로 만나거나 알아보는 내 세대들이 있을 것이다. 여전한 어려움과 여전한 유혹과 갈등 역시.
[싸가지와 둘리]는 아이 입장이 안타까워 부부에게 원망과 화가 나던 작품이었다. 너무나 현실적이라 무척 불안하던 이야기 전개였다.
[비곗덩어리] 이 제목 역시 다른 문학 작품이 먼저 떠올랐다. 가족, 엄마와 아들 이야기라 한없이 쓸쓸해진다. 엄마가 한 행동은 과연 선택이었을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황금일출]은 중편이고 작가가 연애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해서 좀 다른 기대가 있었다. 작품이 일단 시작되면 작가로서도 등장인물이 하는 일을 말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던데, 그래서 점점 무거워지는 이야기 전개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일까. 심정적으로 가장 거리가 멀고 아는 바가 없어 긴장한 소설이라 더 느리고 천천히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예전 일로 다가오는 감성들이 가득하니, 20대 독자들은 그야말로 부모님 세대의 정서와 시대와 분위기를 배울 작품들이라 생각된다.
쉽지 않은 상황에 주인공들이 겪는 어려운 심리들을 읽어 내는 것이 필요하지만 문장 자체가 아주 깔끔하니 읽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
자주 언급하지만 단편의 장점은 그 분량에도 있다. 아무리 지친 날이라도 한편 정도는 읽을 기운이 있다는 것. 익숙하고 새롭고 진지해서 감사한 작품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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