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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깨우는 수학 - 수학을 잘하고 싶다면 먼저 생각을 움직여라
장허 지음, 김지혜 옮김, 신재호 감수 / 미디어숲 / 2021년 7월
평점 :
세상이 암기력을 미워하고 욕할 때 참여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게을러서 지름길도 비법도 없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암기를 잘 하지 못한 세월이 아프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적을 내용들이 욕을 먹거나 적을 만드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어쨌든 암기 과목이 쉽다, 편하다는 말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외울 분량이 한 페이지 정도면 어찌해보겠으나 무려 단행본 교과서 여러 개가 아닌가.
수학은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다 풀고 난 퍼즐처럼 비밀이 다 보이고 그런 공식을 사용한 문제들 역시 풀어 본 문제들은 언제라도 다시 풀 수 있게 된다. 물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숫자가 아니라 기호가 나오는 경우는 더 수월하다. 연산을 틀릴 위험이 사라지니까. 고등학교 2, 3학년 담임이 같은 분이셨고 수학 담당이셨다. 시험이 끝난 후 교무실로 불려갔는데 답안지를 보니 수학 풀고 산수를 틀렸다. 그래도 두 자리 수 연산이라 많이 부끄럽진 않다. 흠흠...
수학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생각을 깨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추가적인 설명도 타협도 양해도 이해도 필요 없이 말끔한 논리를 계속 따라가면 세상의 많은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무척 아름다운 사고력 훈련임에는 틀림없다.
대학을 가서 첫 수강신청을 하고 꽤나 실망했다. 국영수는 왜 다시 배워야하나, 짜증스러웠다. 이런 거 안 하는 게 전공학과 아닌가, 사기당한 기분. 물리학도 기초물리, 뉴턴물리의 세계에 머물라 하니 그것도 지루했다. 이딴 거 복습하러 진학을 하다니!
다행히 담당교수님 - 입자물리학 전공, 별명 안인슈타인, 안 씨 - 이 출제하신 시험문제들이 무척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높이 몇 미터인 건물에서 누군가 추락사했다. 시신이 놓인 장소는 건물 현관에서 XX 떨어진 곳이다. 자살인지 살해인지 밝혀라. 이런 문제였다.
혹은 A네 집에 자식들 성별은 남남 B는 여여 C는 남녀 D는... 이렇게 개별적인데 외부 조작 없이 표본 인구가 얼마 이상이 되면 남녀 비율이 동률로 수렴하는 이유를 통계물리학의 xx 공식을 사용하여 설명하라.
학교 별로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내가 속한 물리학과는 다섯 문제 출제하고 답안지는 무한 공급해 주고 - 어차피 풀이과정 다 쓰려면 여러 장 필요 - 시험은 항상 저녁 먹고 나서 - 대략 6시 30분이었나, 가물가물, 30년쯤 전이라 - 자정까지였다.
과학에 만점은 없으니 99점이 최고점이고 절대평가를 하니 간혹 일등이 B학점일 경우도 자주 있었다. 오픈 북도 끼리끼리 엿보거나 의논하는 일도 별 의미가 없으니 시험 담당 교수는 자유롭게 연구실과 시험실을 들락날락 하시고, 학생들은 답안지에 기나긴 풀이 적느라 극심한 육체적 통증과 체력 달림을 경험한다. 9시쯤 뭘 먹고 다시 시험본 적도 많다.
수학책 읽고 물리학 얘기하는 이상한 글인데, 물리의 언어는 수학이라 학부 4년 내내 수학만 한 셈이다. 그 수학이 물리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게 되어 엄청 재밌어지면 졸업에 가까워져 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대학원 진학을 하는데 밥벌이가 쉽지 않은 기초과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제자들에 대한 스승들의 걱정과 만류는 엄청나다.
수학을 정말 생각을 깨우는 학문일까,
사고력을 키우고 응용력을 높이는 훈련일까.
논리력을 정교하게 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힘이 되는 공부일까.
계획 하에 실험 데이터를 모아 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2021년에 경험하는 세상과 사람들을 보며 90년대 내가 알던 함께 공부하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구호에 휩쓸리지 않는 분위기였고, 학내 성추행이 발생하자 모두 의견 일치로 가해 남성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고 - 여학생이 전체 5% 내외 - 오랜 역사 속 여성에 가해진 차별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수학적 훈련의 공로가 얼마간 있었을까, 그랬길 바라고 여전히 그 유효하길 바란다. 그래서 수학이란 학문이 수험생들 괴롭히는 기피 과목에서 가능한 빨리 탈출할 수 있길 바란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에 수학적 원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언젠가는 ‘수학은 사는데 쓸모없다’는 이야기는 덜 들려오면 좋겠다.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4가지 방법
1. 문제를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라
2. 수학 공부의 가치를 찾아라
3. 명확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말하라
4. 오류를 범하라 : 먼저 문제를 이해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