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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평점 :
“나는 서서히, 일부러 육체를 몰아붙여 깎아내려고 기를 쓰는 자신, 괴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체력과 돈과 시간, 내가 지닌 것을 잘라버리며 무언가에 파고든다. (,,,) 괴로움과 맞바꿔 나 자신을 무언가에 계속 쏟아 붓다 보니 거기에 내 존재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됐다.”
살아간다는 일은 무엇이고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가치 있다는 평가는 또 무엇인지 여러 생각이 든다. 영문도 모르고 태어나 주위의 반응에 따라 적응하고 배우며 성장하다가 어느 날 법적 성인이란 고지를 받고, 어느 날 경제적 책임을 홀로 지기도 하고, 어느 날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기도 하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런 여정을 걷다 문득 걸음이 멈춰지는 사람들, 어떻게 해야 이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이들, 그런 이야기이고 그렇지만은 않은 이야기도 하다. 누군가의 애착에 대해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는 엄청난 의도를 가진 작품이다. 1999년 생 저자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 도전한 자신을 칭찬한다.
‘아카리’에게는 오시 - 최애(最愛) - * 가 있다. 단어의 뜻으로 짐작하실 것이다. 물론 대상에 담는 의미는 모두 다르다. 그건 최애 입장에서도 그렇고 최애를 애정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나는 잘 모르는 세계, 경험하지 못한 세계라 단어도 정서도 새롭다. 짐작도 아주 많이 하며 읽었다.
“언제부터 좋아했다거나 몇 년 전부터 응원했다거나 근황 보고 같은 자기 이야기만 잔뜩 적은 편지를 보내는 팬이요. 기뻐요, 기쁘긴 한데 왠지 심리적인 거리가 (...) 그러니까 가사를 쓰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누구 한 사람쯤은 알아줄지도 모르니까, 뭔가 간파해줄지도 모르니까요. 안 그러면 못 버텨요, 무대에 서는 거요.”
예를 들면, ‘최애가 불타버렸다’ 라는 표현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온라인상에서 비난, 비판 등이 거세게 일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라 한다. ‘최애는 목숨과 직결되니까’ 라는 표현은 충격적이지만 최애라는 호칭 속에 이미 그런 의미가 있구나 싶기도 하다.
팬도 아니었고 따뜻한 응원도 애정도 보낸 적이 없지만, 장사질에 눈이 먼 기자증 가진 것들이 무대 만들고, 온종일 누구 욕할까에 골몰하듯 댓글에 토악질을 하던 놈들이 달려들어 물어뜯고 죽어라 죽어라 하여... 그딴 거 욕이나 해주고 잘 살지... 정말 삶을 끝낸 서러운 한국의 누군가의 최애들이 떠오른다.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의 제목을 경멸했다. 살인이 추억의 대상이 된다는 언급 자체에 분노가 치밀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문득 영화의 장면들이 대사들이 떠오르곤 했다. 놀라울 정도로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은 그 후로 뭐하고 사는지, 입맛은 잃지 않고 잘 찾아 먹고 사는지, 사람 죽이고 다녀도 기소조차 되지 않은 범죄자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때때로 최애로 살고 최애에 집중하면서 사는 이들 모두가 삶을 유예하는지 죽음을 유예하는지 헷갈리며 그들의 삶을 번갈아 엿보았다. 생명력이 떨어지고 냉정해질수록 애쓰며 살아야할 이유 같은 건 보이지 않을 때가 없지 않다.
나는 신기해하는 거 감탄하는 거 재밌어 하는 일을 좋아하니 책과 영화란 그런 점에서 지겨울 수가 없다. 새 책과 새 영화들은 고맙게도 늘 등장하고, 심지어 봤던 거 또 봐도 좋은 작품들도 아주 많다. 그러니 내 죽음은 책과 영화(와 좋은 사람들)가 유예를 돕는 셈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라 살아라~ 하며 열심히 우리를 돌봐주는 셈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일은 좋은 일이다. 더 힘이 나는 일이다. 원하면 더 단단해지는 일이다. 그래서 최애를 좋아하는 감정 자체를 즐기는 아카리를 비난하는 가족들이 안타깝다. 아무 것도 못하는 아이라니…….
“희망도 없는데 계속 매달려봤자 무의미하다느니, 그런 친구를 뭐하러 계속 돌보느냐느니 한다.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데 멋대로 불쌍하다고 하니까 지겹다. 나는 최애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하고, 이것만으로 행복이 성립하니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는 하지 말았으면 한다.”
팬질 덕질 좀 흠뻑 빠져 신나게 하고 살 걸, 오래된 역사에 끼어들지 못해 결핍과 소외와 부러움과 질투와 시기심이 든다. 하라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의 덕질을 초월한 단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카리를 힘껏 응원한다!
“조회수 따위 필요 없다. 나는 철저하게 최애만 응원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