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평점 :
역사서를 좋아하고 독서량도 적지 않았지만 전혀 몰랐던 것들은 끊임없이 등장한다. 불평이 아니라 신기하고 흥미롭다. 하시딕이라는 유대교 정통파의 교리에 입각해 살아가는 공동체 사트카에 대해서 처음 배웠다.
외부의 박해가 극심할수록 더욱 자신만의 것, 고유한 것, 정통과 전통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시기가 모두를 위해 함께 노력했다기보다 누군가들의 희생을 대가로 지나왔고 이후로도 변화 없이 ‘최초’의 사명감만 되새김질 하는 경우일 것이다.
“진실에 대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나는 선생님이 문법을 틀리거나 문구를 잘못 인용할 때마다 반드시 지적했다. 그 결과 버릇없는 아이로 낙인찍혔다.”
“이토록 잔인한 세상을 만든 게 신이라면 자비를 호소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라리 할 테면 해보라고 도전하는 편이 나았다.”
태어나보니 내가 속한 세상에서 나는 배울 기회도 없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해서도 안 되며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출산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한국적 상황 같기도 하지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게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뉴욕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시오니스트들이 세계적인 부를 축적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그에 동조하거나 이익을 나누려는 다국적 기업들도 협력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영역의 일이고 관련 내용은 예전부터 열심히 들어왔고 그런 기업들의 제품은 꾸준히 불매하고 있다.
열심히 살펴 불매하지 않으면 내가 쓴 돈이 무기구매자금이 되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기 때문에 아는 한은 전쟁범죄에 동참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 책은 그 경계를 늘려 정치만이 아니라 종교와 개개인의 삶에 시선이 닿도록 큰 도움을 준 책이다.
저자와 경험의 정체성이 명확할수록 공감의 폭은 줄어들지 않을까 독서의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기도 하다. 다행히 많은 문장들이 낯설기보다 익숙했고 그 점이 여성으로 살아가는 고단한 삶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듯해 더 아팠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심판을 받을 때 다윗왕이 상벌의 기준이 된다고 배웠다. 첩을 두는 것에 비하면 내가 숨겨둔 영어 책 몇 권 정도는 새 발의 피가 아닌가. 바로 이 생각을 한 순간, 내 안에서 저항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신의 기적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기적을 만드는 여성이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속죄일 기도를 중얼거리긴 해도, 나는 기도문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고 자비를 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읽을수록 유대인 여성들의 삶은 종교 때문에 처참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종교적 공동체의 폐쇄성보다 여타의 다른 성차별 요소들 때문만도 아닌 듯하다.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고 유기적이라 어디서 풀어야 풀릴지 모를 참 공고하게 짜인 권력 문제이다.
자신의 세계에서 발견한 문제를 끝까지 싸우거나 해결하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온 이를 비난하는 시선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한 개인이 해결하기에 엄청난 문제라 나는 그가 외부로, 다른 세상으로 나온 것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다. 이상적인 사회란 없지만 그래도 여러 종류의 합리성을 실험하고 실패하는 편이 시도조차 없는 곳보다는 안전하고 희망이 있으니까.
“내부에 존재하는 위험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회가 위험을 감추는 사회보다 더 낫다고 결론 내렸다.”
이 책을 출간함으로써 저자는 필히 밀고자처럼 비난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자신의 내면도 잘 들여다보고 반성하지 않으면 여러 실수와 오류를 만드는데, 집단과 조직은 자정이든 감시든 관리든 저항과 제재를 받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폐해를 양산할 위험이 크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불가피한 일이다.
“아이가 내 경험에 영향 받기를 원치 않으며, 두려움이나 혼란 없이 세상을 탐험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꿈꾸던 어린 시절을 아이가 누리고 있음에 감격한다. 설사 아이가 자라서 랍비나 탈무드 학자가 되기로 결심하더라도 그 선택은 스스로 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저자는 공동체의 위계적 구조에서 이익을 적극적으로 구가하던 이도 아니고 배당에 불만이 있어 내부를 고발한 자도 아니다. 단지 본인의 언어로 자신이 느끼고 체험한 부당함을 드러내고 저항하는 솔직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의 메시지가 유사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닿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언어를 가지지 못한, 혼자라서 아무 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꼭 도착하기를.
“사람들은 내가 행복을 찾았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자기 진실성authenticity’이다. 나는 마침내 나 자신으로 살아갈 자유를 얻었으며,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