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없는 변호사입니다
이지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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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을 듣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같은 분야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실패담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각자에게 맞는 격려가 될 수 있다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는 청자도 멋지지만 자신의 실패담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화자도 대단하다실패의 후유증이 가셨다 하더라도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스스로의 확실한 실패일 텐데.

 

시애틀에 살고 있는 내 친구와 시대는 다르지만 이리저리 겹치는 이력들이 있어 궁금했다독자들에게는 한국적인 상황이 아니라 관심이 덜할 수도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싶다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읽어 보는 일은 당장 쓰임이 덜하더라도 사고에 인상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뜻밖에도 나는 한국에서는 여지가 없을 듯한 교육 과정과 그에 반응하는 저자의 선택과 행동이 무척 흥미있었다가능한 솔직한 칭찬을 더 많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쉽게 한 평가가 다른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 수도 있다는 점을 조금 더 무겁게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잘 몰라서온전히 실수로 가까운 누군가를 상처 주기도 하는 일저자는 열두 살 어린 오빠가 남긴 흉터를 보며 사람에 대한 이해를 깊이 오래 한 듯하다여전히 오빠는 동생에게 남긴 상처를 곱씹으며 자신을 원망하지만저자는 인식에 대해 자기 나름의 믿음으로 흉터를 상처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인다.

 

타인으로 인한 상처보다는 자신감이 없이 자괴감을 느끼고 타인에게 부러움과 시기질투를 느끼는 자신이 입힌 상처를 깊이 돌아본다기이하게도 매 순간 불안과 좌절로 지옥 같았던 날들에 올린 SNS 글에 누군가가 자신을 부럽다고 댓글을 올린 것을 보고 부러움이라는 것이 가진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갈망에 대해 절감한다.

 

생각과 시선이 달라지니 부정적인 판단은 최악과 절망을 미리 위무하기 위한 방어적인 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따라서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도 천성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그렇다고 세상은 아름다워인생은 아름다워식의 시각은 아니라 내 삶에 결여된 것들을 세어보는 일을 멈추는 일이랄까. 자신을 철없다 하지만 그건 겸손의 표현인 듯하다.

 

상처와 부족함투성이의 나는 행복을 다른 누군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끌어내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내 소개글 때문에 저자의 시각과 생각에 집중한 소개글이라 에피소드는 없나 하실 지도 모르겠다. ‘법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만 그 외 다양한 문제들에 관한 고찰은 풍성하다종교관가치관정치 이데올로기대인관계정신질환 그리고 연애까지.

 

저자 자신이 당당하게(?!) 비행청소년이었다고 들려주는 이야기도 있고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싶게 우여곡절 다 겪고 변호사가 되는 과정도 있고안타깝게도 그 이후에 자신의 꿈과 적성을 다시 고민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저자는 이 모든 여정이 피해갈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결국 신발을 버릴 수 있는 선택권을 나에게 있었다살면서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지만결국 맨발인 상태가 더 편할 때처럼혼자인게 더 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집착을 포기하고 살아가다 보면 아픔이라는 것은 시간과 함께 잊히고는 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난 여러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강렬하다어린 소녀들은 왜 감옥 생활을 자처하는지... 약물에 중독된 청소년들의 일상은 어떤지길가의 노숙자로 살면서 저자에게 삶을 바꿀 영감을 제공한 인물제대로 살아 보기 전에 자살한 여배우저자가 관심을 두는 시대의 영웅들 그리고 신도 등장한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이 책은 성공담과 행복론이 아니다그러니 지침서도 비법도 없다저자는 자신이 겁쟁이였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오히려 자신의 삶을 복잡하고 어려운 장편소설처럼 차분하게 읽어가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담백하게 분석을 마친 후기를 읽는 기분이 든다.

 

생각 없이 사는 일은 간단하다지금은 외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지식정보의 홍수시대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대신해주는 이들이 많고 그런 글들도 부지기수다그래도 다른 사람의 경험과 생각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그러니 자기 고찰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싶었다는 이 실패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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