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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나 혼자 산다 - 외로워도 슬퍼도 발랄 유쾌 비혼 라이프
엘리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7월
평점 :
지금도 사용되는 지는 잘 모르나 작년인가 갑자기 폭발하듯 한국인들이 기이한 성애 고백을 일삼는 대화를 들었다. 면성애주의자, 고기성애주의자, 김치성애주의자... 거의 모든 사물에 성적 욕망을 느낄 만큼 강렬한 애정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헤테로 - 이성애주의자들의 세계가 난잡하고 문란하더라도 이건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맥락을 보니 뭘 엄청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방송계에선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지 이상한 노릇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말 것을 괜히 친구들에게 물었다 가 에로티시즘에 대한 경직성을 질타 받고 삐쳤다. 그래 뭐든 성애를 느낄 수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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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이 <연애하지 않을 권리>라 하여 읽은 책인데 했으나, 알고 보니 그 책은 <연애하지 않을 자유> 이었다. 노화가 심각하다. 권리와 자유를 헷갈리는 위태로운 상태이다.
전작의 부제가 ‘우리는 누군가의 애인이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성애도 연애도 결혼도 지나치게 사회화되고 강제된 세월이 길다.
인구가 국력이고 전사가 필요하고 노동력이 필수인 시절의 요구사항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인구가 75억 명을 넘어 환경 부담이 커진 것에도 공로가 있지 싶다.
이번 책은 ‘혈혈단신’이 아니라 ‘훨훨단신’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바탕으로 쓴 책이라 한다.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홀몸이 아니라 여유롭고 자유롭다!
“누군가 운이 좋아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했더라도 그것이 곧 모든 여성이 ‘하지 않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평가가 어떻든 간에 현재 1인 가구 비율은 30%를 넘었다. 당연히 생활방식, 가치관도 변하는 중이고, 비혼도 독신과 동거의 형태가 있고, 기혼도 무자녀에 동의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판데믹과 기후위기가 겹친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거대한 패닉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인류가 짐작보다 훨씬 더 문명화된, 참 훌륭한 사람들인가 보다고 자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둘이 된다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까? (...) 만약 영화 <케빈에 대하여>처럼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가 된다면? 또 ‘정상’이란 범주에 나를 끼워 맞추기 위해 홀로 발버둥 쳐야 하겠지. 생각이 너무 많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맞춰 사는 수밖에 없는 데도?”
설마 아직도 ‘연애나 결혼을 못하는 건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이들이 많을까.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 해도 영향력은 확실히 줄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거대한 사회담론과 역사적 추이를 다루며, 세대나 집단을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비혼주의자는 이렇게 생존한다, 는 분투기에 더 어울리는 글이다.
그리고 일상적인 내용들과 계기가 될 때마다 고인 생각들을 유려한 필체로 자신이 사는 한국사회와 엮어 술술 적어 놓으셨다.
“이미 글러 먹었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인연을 맺게 된 R이 덤덤한 투로 얘기했다. 그가 결혼을 완벽히 체념하게 된 건 몇 넌 전 캐나다로 유학 생활을 다녀온 뒤부터였다.
‘집안일은 돕는 것이다’라는 개념을 자신 사람과 ‘부부가 공평히 분담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 또 퇴근하고 10분 아이 얼굴 보는 것도 ‘육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당연히 부부가 서로 한 해씩 번갈아 육아 휴직 계를 받아 아이를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
글 중반에 뜬금없이 얘기해보자면 저자가 마주한 삶에서 뽑아낸 이야기들은 ‘나 하나 키우기도 충분한 삶’, ‘외로워도 슬퍼도 홀로 멋지게 사는 법’, ‘지속 가능한 비혼 라이프를 위하여’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외롭고 슬프기도 하다고 이야기해서 좋다. 그리고 가끔 어떤 내용들은 타인의 눈치도 볼 일 없고 책임질 일도 없고 가능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잘 꾸려 나가보자 하는 실험 보고서 같기도 하다.
“요즘처럼 글쓰기가 재밌고(잘 쓰건 말건), 그림 그리는 게 재밌고, 운동하는 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진짜다. (...) 솔직히 혼자 보내기에도 하루가 정말 짧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듣고 싶은 노래, 그리고 싶은 그림은 많은데 하루가 저무는 것이 아까울 정도다.”
좋은 점도 확실하지만 그 삶 또한 가볍고 홀가분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사람 사는 거 비슷한 모양들이 많다. 뭐 이런 당연한 말만 계속하는 걸까... 나는...
타인을 책임질 일이 없다는 건 내 몸 건사는 나 혼자 해야 하고 어느 구덩이에 빠져도 일단 나를 도울 자는 나 하나뿐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쓰고 읽기를 통해 저자 역시 마음을 생각을 삶을 연대하는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거의 늘 그렇지만 오늘도 읽는 것을 통해 응원하고 연대한다.
“현재의 나는 사회적, 경제적, 개인적 이유들로 인해 비혼을 굳게 다짐했지만, ‘사람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마따나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다양한 변수 (ex. 호르몬의 농간, 환경의 변화 등)에 이 다짐이 흔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외로워서, 혼자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워서, 경제적인 문제로, 주변 사람들이 다 결혼할 때 나만 안 하면 이상해 보이니까’ 등의 이유로만 덜컥 기혼을 선망하게 되는 회피형 기혼 선망자가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 따라서 제정신 멀쩡(?)할 때ml 내가 최대한 이성적인 사고로 적어내려간 문장, 이른바 비상 작동 중지(Emergency Stop) 버튼이 필요했고, 이 책을 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