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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차별주의자 - 보통 사람들의 욕망에 숨어든 차별적 시선
라우라 비스뵈크 지음, 장혜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7월
평점 :
2019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기 전까지는 굉장히 자신만만했다.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닐 뿐 아니라 차별적 언어를 구별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프롤로그에서 혈압이 수직상승하는 부끄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 표현들이 의식도 못하고 사용하던 차별적 표현이라는 것을.
놀란 마음에 살펴보니 그 표현 말고도 여러 개가 드러났다. 나름 업데이트하고 반복 학습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생각 없이 튀어나올 때도 있고, 모르고 사용하는 표현들도 많을 것이다.
가능한 부지런히 책도 읽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으며 자신을 잘 살펴야한다는 평생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한 경험이었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는 2020년 번역 출간된 유럽 사회학자의 글이니 ‘차별주의’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리란 기대가 크다. 필요하고 궁금한 내용의 반가운 제목이다.
특히 사람을 벌레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불편한 ‘라벨링’에 대해 무감해지지 않기 위해서도 다른 나라의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태어난 사회학 책은 귀중한 학습 자료이다.
“극우 정당을 찍는 유권자는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는 사회를 좀먹는 기생충이라고 생각하는 중년 남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생각은 다르지만 원칙은 같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체는 ‘우리’와 ‘남들’의 구분을 기틀 삼아 경계를 짓는다. 다만 남들이 단순히 우리와 다른 차원을 넘어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럴까? 인간은 긍정적 자아상을 구축하고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자신이 겪어봤으니 상대의 어려움을 누구보가 잘 이해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남들’이 상징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 더 나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남들’을 깎아 내리면 만족감도 더해진다.”
“남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사회적 지위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던 남을 향한 경멸과 혐오는 어디에나 있다. (...) 성공과 소비, 비교가 대세인 사회에선 누구나 남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교육 역시 이런 의식적, 무의식적 교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사람들은 자신을 높여 자존감을 키운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남을 향해 독선의 눈길을 보낸다.”
반성, 반성, 반성을 하는 와중에, 저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옳다고 확신하는 우리도 독선에 취약하지 않은가’라고 해서 다시 또 반성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곧 그의 의견이나 행동을 이해하고 그의 관점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 몰래 조용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방법으로도 특정 집단의 관심사가 표현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외침은 위장되고 은폐된 엘리트주의이다. 항상 열정만 쫓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 열정을 바친 직업은 특권층에서 자기 최적화의 우아한 몸짓이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직업은 돈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행위이다. (...)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말하는 그 꿈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 현실을 만든 책임자나 이해 집단, 노동 조건, 정치나 제도를 바꿀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고 탈정치화되며 자족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소비자와 생산 도우미로 전락하고 만다.”
“인턴 자리 하나 얻으려고 (...) 해외 연수를 다녀왔고 컴퓨터 자격증을 땄다. (...)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자격증을 따야 한다. (...)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비슷한 처지의 인턴들과 모여 근로 조건을 논의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고민할 시간이 있을까? 10시간 중노동에 시달리고 퇴근하면 쓰러져 자기 바쁠 것이고, 기껏해야 요가나 몸에 좋다는 샐러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것이다.”
“번아웃과 혁명은 서로를 배제한다.” 한병철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하는 삶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치우며 사는 것보다 더 좋고 바람직하다고 가능한 그렇게 사는 게 좋다고 여러 번 말로 글로 반복한 처지라 심각한 기분으로 읽었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며 천천히 읽어야겠다. 차별주의의 뿌리는 내 안에서도 아주 넓고 깊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몇 십 쪽 읽고 나중을 기약한 한병철 교수의 책도 다시 펼쳐 봐야겠다.
기대한 이상으로 뼈 맞고 혼나는 통찰들이 가득하고 그럼에도 쉽게 읽히고 즉각적으로 푹푹 꽂히는 멋진 책이다.
부지런히 배워야겠다. 배울수록 할 수 없는 일들만 더 많아지니 사는 게 힘겹기는 하지만, 천천히 조심하며 사는 모습이,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한 내게 가능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