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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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이야기인데 떠돌며 살아 온 이야기가 더 진하게 강하게 느껴지는 글이다사용해 본 적 없는 표현, ‘세상을 떠돈다라는 구절이 생각날 만큼.

 

떠돌며 살기로 치자면 지구촌 여기저기를 오가면 산 한 때의 나도한반도에서 전라도 빼고는 이래저래 연고가 있는 나도 만만치는 않지만내게는 잠시 혹은 상당히 오래 머문 집들이 특별한 애정과 추억으로 글로 남지 않았다.

 

이사가 아니라 근무지에 따른 임시주거공간의 의미였고 원래 집이란 짐 맡기고 잠자고 세탁이나 하는 공간이었을 시간도 짧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진짜집이라고 느끼는 곳들은 정해져 있었다조부모님 댁과 부모님 댁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집들이고 불안과 걱정 대신 도움을 청하면 언제나 도와줄 사랑해줄 사람들이 있었던 진짜 집이고 고향이었다.

 

양쪽 조부모님들이 모두 소천하시자 본가만 덩그러니 남았고 부모님 노화와 건강 약화로 간편한(?) 아파트로 이사한 뒤 우리 모두의 집은 사라지고 물리적 공간에 담겼던 추억도 흩어졌다.

 

떠난 분들이 그리운 만큼 따뜻하고 다정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좋은 날 좋은 일에 모이던 그 집들이 그리워서... 왜 사는 공간이 생각이 만남이 내 깜냥 마냥 쪼그라들기만 하는지 속이 상한다.

 

공선옥 작가는 떠돈 이야기살아 온 삶과 머문 집들을 글로 남겨 불멸의 생을 주었다모든 집들이 자신만의 집을 짓기 위한 이유와 영감이 되었다.

 

호기를 부렸던 딱 그만큼 돌아오는 길은 허전했다내가 내 것으로 하고 싶은 것들은 절대로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나의 평소 비관론을 확인하려고 온 것만 같았다나에게 내 집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그러하니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요령껏 나는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인 양 쓰고 살아야지 무슨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다.”

 

불편한 집은 있어도 부끄러운 집은 무엇인가 반발하고 싶은 나조차 툴툴 거리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낸 이야기들이 조곤조곤 정겹다.

 

안락하지도안정적이지도고요하지도 않았던 나의 거처들나의 시간들그리고 내 주위를 음산하게 배회하던 그것불안의 그림자그런 결과로 나는 내가 거쳐온 지리적장소적 공간들에 그리고 시간들에 썩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 나는 나의 장소나의 공간나의 시간나의 생활을 한편으로 연민하면서 또 한편으로 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살았다.”

 

집이란 무엇일까특히나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어버린 한국인들에게 집이란두어 해전인가 부동산 실태 조사 보도를 보니 아파트를 100채도 넘게 가진 이가 있었다그에겐 집이 있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문득 해보았다부동산 자산 말고 어딘가에 소중하게 여기는 집이 있을까.

 

생존에 필수적인 의식주가 사회안전망이 되지 못하고하필이면 부동산 장사로 이익을 챙기는 구조가 고착된 한국의 형편이 난감하다그 대가가 꿈과 삶을 몽땅 바치라하니 동화 속 악당의 요구보다 더 악랄하다주인공도 영웅도 현자도 해피엔딩도 없이 삶을 갈아 넣다 영혼까지 바쳐야 한다


이런 동화를 읽은 아이들은 울음을 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사는 어른들은 어떤 울음을 넘기고 있는지.

 

공선옥 저자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가난만 알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아쉬워한다자식 먹일 밥상을 차리려 뼈가 녹도록 농사일을 하던 엄마는 고생 끝에 돌아가셨다


저자가 엄마를 부르고 평생 객지를 떠돌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라 방언은 그 정서를 다 녹여낼 수 있도록 녹진하다는데 나는 말맛을 볼 줄 몰라 조금 서럽다.

 

집도 생각할 줄 안다집도 표정이 있다때로는 집이 말도 한다집은 웃는다집은 울기도 한다나는 그 모든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집이 내게는 얼마나 미운 집이고 미운 만큼 얼마나 정다운 집인지.”

 

춥고 덥고 슬프고 서럽던 시절이 머무는 책이 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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