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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주의자, 라는 것은 아주 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보았을 때 궁금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가가 숲속에서 뭘 하고 있을까 상상이 어려워서. 일단 왜 미국의 숲속으로 간 것인지, 그래서 어찌 살았는지 누구나 궁금해 할 상황입니다.
오래 전 그러니까 1993년에 출간된 책 <월든>을 책임을 온전히 지는 삶을 미처 경험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책 내용이야 대충 이해했지만 그것뿐이었지요. 접점도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생태학이 시대정신이라 생각되어 일단 알고는 있어야겠다고 공부를 하면서도 나는 늘 ‘자연과 가까이 하는 삶’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형이었습니다. 빌트인 구조의 주거형태가 합리적이라 여겼고, 눈 뜨면 백화점에 입주한 센터에 운동하고 씻고 포장 음식을 구매해서 출근하는 일상이 편했습니다. 퇴근 후 다시 운동하고 간단한 장을 보고 귀가하니 누가 백화점 꼭대기에 살라고 하면 아주 좋아했을 겁니다.
일상의 모습만이 아니라 세계관 역시 자연과 인간은 가능한 분리되어 서로를 덜 간섭하고 사는 방식이 맞다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숲을 대변해서 한 문장씩 쓰자는 행사에서 소신을 담아 “Leave us alone!” 숲과 동물과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 일 순위는 이것일 거라 확신했습니다.
서로 접촉과 간섭이 줄어드는 편이 경계가 허물어지 않는 편이 낫다고 믿었습니다. 코로나 판데믹 상황을 보면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고도 볼 수 없겠지만, 한편 인간에게 그런 자제심이 있으리라 믿었던 것은 아니니 게으르고 허황한 생각이기도 했다고 봅니다.
40세에 은퇴한 남편이 가장 부럽습니다. 저는 45세 은퇴가 계획이었는데……. 시애틀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어쨌든 숲속이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친절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웃으로 계시고 궁금증이 증폭해서 아주 공격적인 성격을 띠는 질문들을 받을 때도 있지만 육아법 책을 쓴 교육심리학 박사로서의 방어력이 나쁘지 않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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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그때 복귀하자.”
“후회되지 않을 만큼 이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목적이다. (...) 나쁜 일은 생기겠지만 (...)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렇게 살았을 삶을 사는 게 목적이니까.”
박혜윤 저자를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글 속에서 느낀 바는 명철한 철학자이자 행동가라는 점이다. <월든>이 애독서이지만 소로의 사는 방식은 맞지 않다고 구분하고 자신이 발효시킨 생각에 따라 묵묵히 그러나 확실히 살아간다.
“친환경적인 농사는 없다. 농사는 원해 환경 파괴를 기본으로 한다.”
“부모의 교육 방침과 태도는 시대적 산물이다.”
“내가 지켜야 할 가치가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사라지면, 똑같은 행동을 해도 가볍고 즐겁다.”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을 완전히 다 버리지 않았다고 자본주의자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과하다고 느낀다. 생존을 위해 따르는 방식이 ‘~주의’에 이르는 적극성을 지니지 않아 보인다. 다만 미국사회에 비춰보아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주 선명하게 정치 사회적 지표를 보인다는 점에서 그리 제목을 정한 것도 같다.
“이토록 외진 곳에 살아도 사회와 나는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 역시 자본주의 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돈을 버는 과정이 나를 나답게 하는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이 답을 찾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한 가지 동의할 수 없었던(?) 내용은 사슴과 관련된 일이었다. 저자는 농사를 망치는 사슴을 미워하기 보다 사슴처럼 살기로 - 수렵 채집 - 정했다고 한다. 완전히 사적인 저항감이라고나 할까.
덴마크 코펜하겐 사슴공원 근처에서 몇 달을 살아본 내 경험상 - 사슴은 디즈니의 귀염둥이들이 아닙니다. 덩치가 크고 사납고 꽹과리와 징의 중간 어디쯤을 울리는 소리로 울고 발정기에는 아예 곁에 가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 어쩔 수 없이 움찔했다. 시애틀 변두리 사슴들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 이건 그냥 사적 감정의 일반화의 오류라고 치자.
그런데... 다 읽고 나니 하루 종일 무거웠던 기분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거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리저리 사소한 것들까지 내보이는 글이라 마음이 편하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결코 자신들이 발견한 삶이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시종일관 가족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모습이 멋지고 부러웠다.
“나 자신을 믿는 것은 언제고 허물어질 수 있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어지만, 나를 칭찬하고 나를 긍정해주는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은 꽤나 든든하다.”
“우리 모두의 행동이 합쳐져서 인간의 멸종을 부른다면 그것도 지구 전체에게는 더 좋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원치 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나의 전략대로 열심히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다 같이 잘 살아남자. 가능한 모두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