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름다워질 때까지 걷기로 했다 - 지구를 지키는 사 남매와 오색달팽이의 플로깅 이야기
이자경 지음 / 담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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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걸음마도 쉽지 않았던 지훈이가 휴지통에 과자상자를 넣기 위해 서너 번 넘어졌다가 일어섰다가를 반복했다.

 

다시 해볼까하나.”

골인짝짝짝.”

 

플로깅’*이란 언어 이전에 이미 실존하고 실천한 이들이 있었다플로깅을 시작한 계기도 무척 재미있다첫째 아이와 함께 쓰레기 골인시키기 놀이로 시작한 것이 쓰레기 줍기로 계속 이어졌다고 하신다햇수로 9년이니 이분들이 바꾸신 강산의 모습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플로깅이랑 스웨덴어의 줍다(plocka upp)와 영어의 달리기(jogging)를 합성한 말로 걷거나 뛰면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활동.



Candor TechSpace in association with Ploggers of India organised a ‘plogging’ drive 

(the act of picking up litter while jogging) at its campuses in Gurugram and Noida. 

The activity was beneficial to employees’ health and the environment.


 

플로깅.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고지구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위한 의무였으며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과정이었다쓰레기를 줍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의미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찰나의 부지런함으로 내가 지나가는 길을 바꾸는 것은 내 삶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차곡차곡 쌓인 날들은 힘이 엄청 센가 보다플로깅을 꾸준히 하신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늘 잘 일치하지 않는 작업일 지도 모르는데멋진 에세이로 완성되었다다른 무엇보다 플로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목표가 확실하셨고 꾸준히 하시는 근력이 비법이 아닌가 혼자 짐작해본다.

 

제목이 참 멋지다당위도 진위도 아닌 아름다움꽤나 오래된 일이지만 야생동물 밀렵과 그 가죽으로 옷 만드는 일을 반대하는 시위 장면들과 인터뷰 영상들 중에 내가 가장 확실하게 설득당한 말과 통한다.

 

표범 가죽은 표범이 입는 것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 한 문장으로 표범 가죽을 벗겨 자신의 몸에 씌운 모든 인간들이 우스워졌다어떤 반대 논리도도 뒤집을 수 없는 한판승이었다너무나 통쾌해서 찬탄을 하며 크게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진지하게 생태철학을 전공하고 있던 때라 심각하게 흔들렸다수백 권의 책을 읽고 논문을 쓴다고 해도 저 한 문장보다 더 전달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용기 있게 다 작파하고 다른 길을 찾았다면 좀 더 본질에 다가간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저자와 사남매도 지구도 매일 아름다워지는 이야기를 좀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 본다

 

 

아이들 *

 

어머니우리는 쓰레기만 주웠을 뿐인데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어머니해파랑길은 너무 아름다운데 사람들이 왜 쓰레기를 많이 버렸을까요?”

 

어머니해파랑길 말고 남파랑길도 있어요?”

남파랑길은 있어.”

그러면 더 파란 길은요?”

더 파란 길은 없는데.”

그러면 우리가 지나간 길은 깨끗해지니깐 더 파란 길로 이름 지어요.”

 

아버지모든 사람들이 자기 생일 하루만이라도 쓰레기를 줍는다면 지구는 얼마나 깨끗해질까요?

 

아이들의 목소리는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뻐근해진다맑은 시선에 비치는 모든 풍경에 마음을 졸인다어른성인기성세대뭐라 불리건…… 내 역할은 부끄러움에 잠식되는 때가 잦다.


 

어머니 저자 제로웨이스트실천가 플로깅활동가 등등 *

 

아이의 말에나 역시 쓰레기로 가득 찬 세상에 한몫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웠다. ‘사람이 태어나서 쓰레기를 만들고 가는 일은 있어도줄이고 가는 일은 없다라는 말도 생각났다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10, 20년 후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지만아이들이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내가 버린 쓰레기가 나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니 물건을 함부로 살 수 없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 플로깅은 왜 이토록 오래 하고 있을까?’

왜 매일 하고 있는 걸까?’

 

문득 어릴 적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태양이 좋은 날마당에 앉아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놀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엄마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앉은 채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두 손에 책을 들고 계셨다엄마는 나에게 공부해라”, “책 좀 읽어라”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나는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랐다.

 

엄마는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었고가방에는 항상 책을 넣고 다니면서 버스에서든지하철에서든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읽으셨다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라서인지 내 가방에는 늘 책이 있었다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나의 아이들도 나를 보고 자라겠지.

 

우리 집 도랑에는 개구리와 도롱뇽이 살고 있다집에서 사용한 물이 도랑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물에 사는 개구리와 도롱뇽이 걱정된다내가 버린 물을 마시고 행여 내일 아침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나는 작은 벌레의 존재를 힘들어했던 사람이다하지만 지금은 텃밭에 사는 지렁이와 작은 벌레 덕분에 우리가 더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다시 내려와야 하는 길을 올라가고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

 

자연 속에서자연스럽게 살고 싶다자연 속에서행복의 뿌리를 내리며 살고 싶다.”

 

몇 주 전 5월 어느 날 생일 맞은 초등생 아이가 생일파티 대신에 친구들과 플로깅을 하고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참 잘했어요이런 말을 하기에는 혼자 감당하고 있는 수치심이 커서 발그레해진 얼굴들을 보기만 했다얼마의 금액을 클릭클릭 후원하고 맘 편히 먹고 마실 것들을 사서 오롯하게 즐기는 내 생일의 풍경이 떠올랐다.

 

저자와 가족들이 플로깅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환경이 꼭 펼쳐지길 바란다모두의 일인데 남 일처럼 바라는 것도 참 민망한 일이다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꾸준히 하는 것으로 변명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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