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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소설들에서 장인의 후광이 페이지마다 뿜어 나올듯한 정밀한 설정과 묘사 덕분에 소름끼치는 현상으로서의 ‘악’을 도중에 그만 둘 수도 없이 고찰하게 만든 마력의 작가가 정유정이다.
집필보다 사전조사의 노고가 더 컸으리란 짐작에 맞게 어마어마한, 집필에의 집요하고도 뜨거운 애정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동력으로 작품을 탄생시키셨다고 들었다. 작가가 된다는 무게감과 치열한 글쓰기에 대해 이토록 생생하게 말로 잘 전하는 작가도 드물 것이라 탄복했다. 3년 만에 나온 500페이지를 넘는 <완전한 행복>, 당연히 완성도는 극상일 것이다.
띠지만 벗겼는데도 왜 이리 더 무서운가요...
정유정 작품들은 책을 읽는 눈의 각막 위에서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고 신체가 절단되는 소스라치는 ‘뇌’적 충격을 느끼며 읽는 글들이다. 그의 작품에는 ‘살인이 일어났다’ ‘시체가 놓여 있다’와 같은 순둥한 문장은 없다. 잠시 넋을 잃고 읽다 보면 축축한 시신을 두 팔로 안아 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중언부언이지만 주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치밀한 구성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아도 신간은 늘 고대되는 법! 3년 만에 현상으로서의 ‘악’을 추동하는 ‘욕망’을 다루는 책이 출간되어 엄청 반갑다. 친필 사인이 담긴 감격스러운 책을 펼쳤다. 추리 작품 자체와는 일견 결을 달리하는 듯도 하지만 현상의 본질의 깊은 심연을 파고드는 작가의 시선답게 사건을 꿰뚫는 통찰이 도저하다.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증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미덕이다.
다만 온 세상이 '너는 특별한 존재'라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그와 함께 누구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 또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믿는 순간,
개인은 고유한 인간이 아닌 위험한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정 <완전한 행복> '작가의 말'에서.
내용에 휘둘리기 전에 현실 독자로서 뼈를 맞는구나. 이제 어디서건 하소연과 한탄을 줄여야겠다. 감당할 일은 그냥 감당해야 하는 법!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이 문장들만 보고서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을 바로 떠올리실 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던 그 사건, 그 가해자. 자기애성 성격장애 유형의 사이코패스!
이미 언급했듯이 치밀하고 생생한 묘사는 텍스트를 영상과 가상체험에 근접하게 한다. 늦은 밤 혼자 읽으시면 극상의 짜릿함을 맛보실 수도 있으나 올 여름 낮 더위에 지칠 때 함께 해도 충분히 양 팔에 소름을 경험하실 수는 있을 것이다. 😱🥶🙏💙
내용은 모두 생략이다. 읽으실 분들은 가능한 줄거리도 찾지 마시고 바로 작품 속으로 뛰어드시길 바란다. 시원하다 곧 서늘해진다. 올 여름을 함께할 멋진 동반자 책이라 추천 드린다. 욕을 별로 안 먹을 듯해 아주 조금만 불안하다. 😁😊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2021년 6월 정유정
‘욕망 3부작’이 시작되었다. 마무리까지 나는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