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의 타이밍
이선주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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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취보다 너의 상처에 닿는 일이 더 아름답다.

 

무루 작가의 추천사에서 만난 문장에 청소년 시절에 가진 마음이 화석이 녹듯 꿈틀거렸다당시에는 진실하고 당연했던 말이었다막 세상의 경계가 넓어지고 현실의 모습들이 보이고 아름답거나 밝지 않은 것들도 직시할 힘이 붙고 용감한 생각도 해보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무척 중요한 시절이다


열여섯 살다섯 명.

 

표지를 보고 그래픽노블인가 했는데 장편 소설이다자주 경험하듯 청소년 문학은 때로 몹시 깊고 날카롭고 직설적이라 예상치 못한 혹은 기대 이상의 충격을 받기도 한다살짝 겁을 내다 읽어 본다.

 

카톡을 하는 데 무슨 의의가 있는 건 아니다그냥 편하기 때문이다편한 이유는친구들 대부분이 하기 때문이다이런 걸 사회 시간에 배운 문화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별 과제를 하는데 카톡을 안 하는 친구 남주가 있다안 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을 수도 있는 문제일까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이상한 것일까혹은 신념일까.

 

다행히 정윤은 남주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일단 나는 카톡 안 하는 게 노력해서 이해하고 이해받고 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랍다저는 안 합니다했다가 엄청 놀라서 안 합니다그렇게는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톡카톡카톡...... (...)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쉴 새 없이 카톡이 울렸다. (...) 단톡방에 제일 많이 올라오는 글은 ㅋㅋㅋㅋㅋㅋ” 였다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카톡이 오면 기계처럼 답했다.”

 

세상은 온라인 쌍과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뉘어 있고온라인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도 서서히 존재가 지워졌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결코 그냥 넘기지 않는다이해하지 못하면 악으로 만들어서라도 이해하고 싶어 했다. (...) 대결만큼 명확한 구도는 없으니까아이들은 (...) 남주를 악의 영역에 두려고 했으며근거를 찾으려 했다그 근거는 대개 실체가 조금 섞인 거짓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사고방식이 무시무시하다방어 기제인지 공격 방식인지 조금씩 헷갈리기도 하지만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인간의 반응 속도는 멈칫 거리는 법이 없다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배운 것들이라 창작물이지만 현실은 더 대단할 듯해서 두렵고 미안하다.

 

단톡방은 진지하게 성찰해야할 문제이지만 첫 번째 순서답게 충격을 유예한 소재이기도 하다다른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들 중 아주 심각한 범죄에 이른 사건을 접하면서는 무척 끔찍했다. 이야기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역시 현실이 더 대단할 듯해서 더 두렵다


한 방에 인생이 결정 나기도 한다고 협박 비슷한 강요를 당하는 시기,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고 강박적으로 훈련받은 아이들의 시기는 팽팽하고 뜨겁다. 아이들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극히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깊이 느낀다.

 

작가는 차분하고 끈기 있게 모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지만나는 아이들의 삶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팽배한 에너지들이 불안해서 조마조마했다결합이 끊어지는 반응 속도가 빠른 물질의 해체를 우리 사회에서는 폭탄이라고 부른다


불안한 심정으로 비극을 목격하는 독서가 달갑지 않았는데, 다행히 작가가 이끄는 먼 곳의 방향이 각자에게 맞는 성장의 모습이라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서는 모습이라 안도했다.

 

기억도 흐려졌고 내 시절과 이 시절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 시기란 궁금한 것은 많지만 되는 일은 적어 힘든 마음을 털어 놓고 싶어도 누구에게 얼마나 솔직해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시간임에는 분명하다진심을 정확히 전할 능력도 부족하고 나를 드러내는 일도 두렵다그런 시절이다


나이가 들면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덕분에 나도 남도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포기도 하게 된다. 비겁한 듯 들려도 덕분에 세상의 모순과 결핍이 조금 덜 고통스럽고 포기한 여백으로 인해 남은 에너지로 희망을 그려볼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마법이나 초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해법은 우리가 아는 그 방법 밖에는 없다.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지만 서로가 아니고서는 희망을 찾을 다른 곳이 없으니까


역지사지


나는 이럴 때 아프던데 저 애도 그럴까나처럼 저 애도 혼자 울었을까나처럼 저 애도 누군가 말을 걸고 마음을 내어주면 반갑고 위로가 될까이렇게 상상하고 용기를 내어 다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


어쩐지 경구만 읊는 것도 같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세상은 공고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거세며 누가 되었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 어른보다 실수가 적고 잘못이 적은 아이들, 미래를  살아 갈 아이들에게 희망을 두고 힘껏 응원한다. 무책임과는 다른 마음으로...  어른들은 부디 현실을 좀 더 잘 책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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