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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 (양장)
김중미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빈민가’라니. ‘빈곤 체험관’이라니. 뭘 체험하겠다는 것인지 담당공무원 업무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영화 기생충의 흥행과 수상 이후 반지하 체험관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도 기억이 설핏 난다.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살 수가 없네. 부끄럽습니다. 제발.
“영화가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세상은 그 엄청난 사기 사건의 피해자인 노인, 주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영화에서처럼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아무리 구차하고 힘들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은강동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타인과의 어깨동무로 살아남았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노동이든, 공간이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은강동이다. 그 가난을 모르는 이들이 쪽방 체험관 따위의 터무니없는 구상을 만들어 냈다. 가난은 진열대 위에 전시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제일 좋은 것을 잘 알아보고 골라 선택하는 일만 반복하며 살아야 한다고 - 우리는 실제로 그런 교육을 받았다 -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공동체와 연대를 이야기하는 이 글 속의 열아홉 살 청년들을. 나는 이제 청년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라도 슬쩍 이들 옆에 앉아 보고 싶다.
“지우는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걱정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 착한 사람들이 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이 없는 게 문제이긴 하다. 그래도 마음이 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면, 그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동생이 무척 좋아하는 작가시라 오래 전엔 반가운 강연에도 함께 가곤 했다. 오래 전이라 써서 그런지 참으로 옛 일 같다. 다시 그런 환한 빛 아래서 육성을 듣고 얘기를 나눌 시절이 오려나. 출간해 주셔서 기쁘다. 책을 읽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
모르는 건 약이 못 되고 누군가를 깊이 벨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들려주면서도 여전히 빛나는 것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글로 담은 작품이다. ‘김중미’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출간되고 20년이 지나는 동안 주변의 이웃들은 정규직 노동자에서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 역사 속 어떤 시대도 가난한 이들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미래도 가난한 자들의 편이 아닐 거라고 체념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