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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지성 - 뉴욕에서 그린 나와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
김해완 지음 / 북드라망 / 2018년 4월
평점 :
볼 일이 끝나 자리를 일어선 방문객처럼 남은 생이 내게서 탈출 중이다. 새로운 장소와 만남과 헷갈림과 잃음에서 격리되고 움츠러든 일상에는 권장 루틴이 남았다. 재택이든 직장이든 건전하게 자리 잡은 루틴의 역할은 동일하다. 현기증이 나는 속도로 나를 소모해 어느 날 공갈빵이 부서지듯 산산 조각낼 작정이다. 모든 순간이 아깝고 두렵다. 다들 힘들다하니 튀어나오려는 말은 꾹꾹 삼켜야 한다. 내 시간은 ‘영원히 돈으로 살 수 없’으며, 당겨 쓸 수도 없고 저축할 수도 없는, 속수무책. 들킬 수 없는 표정으로 마음이 탈진할 때까지 울다 진정하는 시절, <뉴욕과 지성>을 만나 읽었다. 낯설지 않은 ‘환상과 갈증 속에서’ 시간이 ‘개츠비적(Gatsbyesque)’으로 불규칙하게 유영했다. ‘삶이 예상치 않게 선물해’ 준 것처럼 안심이 되어 조금은 깊은 숨을 마셨다. 원래도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더욱 더 축소되어, 기대수명이 의미 없는 낯선 시절에 담겨, 남아 있는 날들을 헤아려볼 엄두도 못 낸 채 ‘평범한 아무개의 얼굴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며, ‘개츠비만큼 순진해지고 또 절박해’져서 살아 보고 싶어 한다. 위대한 개츠비의 세계에서 보는 현실 세계는 거짓말을 찬양하는 우스운 곳이다. 돈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니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니. 그런 순간은 기억에 없다. 돈도 많은데 왜 행복하지 않냐고 펑펑 우는 상상은 눈부시고 달콤하다. 저택에, 세운 페라리에, 파묻혀 실크 옷을, 두른 사치스러운 눈물방울들이 내 것이라면! ‘가장 보통의 존재의 환상’ 속에서 아무 것도 잊고 싶지 않은 엉망진창 황홀했던 20살을 계속계속 떠올렸다. 후회, 오욕, 좌절, 실망, 포기, 울음, 위험을 버무린 열에 들뜬 시간의 부식한 땀내조차 잃고 싶지 않다. 현명해지지 못해 정보량이 나잇살로 부패한 채 불만투성이로 살고 있는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모든 기억을 지닌 채 20살로 돌아가는 일이다. 알아낸 것들로 할 수 없는 목록이 한 다발 늘어난 존재로 20살 몸에 갇히는 일. 무모하고 무책임하고 엉망진창인 존재로 살 수 없는 인지의 감옥에 갇히는 일. ‘5번가’에는 환상을 공연하는 개츠비가 최후의 최후까지 살고 있어서 현실과 상상에서 불경해진 모든 화려함을 전해주며 건재해야한다. 그게 아니라면 내 수명은 도리 없이 더 짧아지고 말 것이다. ‘어디에서, 누구와 살 것인가’는 불안을 솟구치게 하는 질문이다. ‘태어날 땅’도 ‘살아갈 땅’도 선택할 수 없다면, 땅이 없다면! 내 ‘휴머니티의 집’은 어디에서 문을 열고 누구를 이웃으로 맞을 것인가. <노매드랜드>를 보고 다시 펼친 책은 ‘정착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네가 보고 온 것은 미래라고, 너는 ‘지치고 황폐해질 것’이라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나의 역사는 그렇게 매일 갱신’해야 한다고, 자기 전에 기억하라고 경고한다. ‘허상 없이 현실과 만나’ ‘모두에게 타향이 된’ 이 세계에서 여러 날을 함께 하고 싶다는 붉은 마음을 먹게, 푸른 꿈을 꾸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모르는 이의 사망과 감염 숫자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라보는 절망적인 외로움, 따라붙는 무력함에 명치부근이 구겨진 채 살고 있다. 제 정신으로 살려면 ‘고도의 의식적인 노력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무지’가 요청되는데, ‘가장 어렵고 또 가장 근본적인 길’ ‘다 함께 살기 위하여 한명 한명의 사람들이 자기 인식의 크기를 넓히는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또 다른 저자의 말을 빌려 전한다. 이런 엄청나게 어려운 프로젝트를 ~ 수밖에 없다, 고 단언하는 젊음은 폭포 끝에서 추락하는 물방울처럼 눈부시게 아름답다.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면서 세상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숙명처럼 ‘오해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종으로서, 유독 불합리가 득세하는 한 나절을 보내면 짧은 생마저 허비시키려는 함정에 빠진 억울함이 짓쳐든다. 놓지 못한 고민으로 박제로 남아 버린 난망함, ‘삶은 생존한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라질 거니까, 죽어 없어질 거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유일한 진실을 잊고 또 잊는 내게 간절히 전한다. ‘삶에서 우연이 개입하는 가장 인간적인 순간에’도, ‘한 번쯤은 꿈꾸어 보았을 헤피엔딩’을 ‘만남을 기대하면서 길을 걷고 싶지 않을’ 수 있는 ‘생명의 특권을 감수’하면서, ‘불안과 적막’ 속에 ‘실감’하고 ‘자연의 우연에 기대어’ 그렇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자본에 손발이 꽁꽁 묶인’, 깊은 생각, 솔직한 감정, 통찰이 스며들 시간을 피하려고 무작스럽게 책을 읽는 현실 ‘존재의 초라함’이 제 몫을 챙기려든다. 세상을 최대한 피해보려 했다.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 역시 싱글이었고 이다. 나는 편독 중독으로 나를 지킬 작정을 오래 전에 마쳤다. 언제나 <매트릭스>사의 파란 알약을 원했다. 죽고 싶지 않았고 내가 아닌 삶도 싫었다. 변명과 이유가 모자란 적이 없어 조금 더 덜 하며 살 수 있는 팁들은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는 주체로서 온전해지기’를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세상 어딘가에는 제도보다 강한 우정이 자유로운 개인의 자율적 연대의 모습으로 번성하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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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적으로 젊었던 시절에도 없던 투명한 질투와 시기, 열패감을 오가며 글을 읽었다,
누구지,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지,
뭐하는 사람이지,
급기야
당신 몇 살이야,
(...)
외치고 싶었던 더웠던 시간.
덕분에 제목은 저토록 솔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