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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강화 섬의 소년들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30
이정호 지음 / 다른 / 2021년 2월
평점 :
소년들의 나이가 열네 살, 열두 살입니다. 읽기도 전에 이들이 겪을 고초가 아픕니다. 강화라는 장소도, 천주교 박해 현장도, 가난도 아이들은 무관한 일인데 휘말리고 고통 받고. 아무리 사소한 소망이라도 모조리 집어 삼키는 무감한 화마는 변별력이 없으니까요.
문득 몇 주 전, 학위도 있는 어른이 열서너 살 여아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계약을 했다는 X소리를 부끄럼 없이 해대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런 자가 학자연하고 살고 있는 세상이라니. 뭐,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닙니다만.
전쟁에서 얻을 이익도 없고 명분도 필요 없던 이들에게 예고 없이 닥친 전쟁, 굶주림을 면하기도 어려운 가난에 여동생은 무장한 배를 몰고 온 서양인들에게 팔려갑니다. 아비가 팔았습니다. 열네 살 오빠 득이는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열두 살 바우는 목숨 걸고 천주교를 믿는 부모로 인해, 도피 계획마저 어긋나서 미끼로 붙잡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입니다.
“한 아이는 가기 싫은 낯선 섬으로 끌려가고, 다른 아이는 자기가 나고 자란 섬으로 동생을 데려오려다 끌려갔다. 마침내 바우와 득이가 만났다. 강화라는 섬, 육지로부터 닫힌 곳이자 바다를 향해 한없이 열린 곳에서.”
아무 힘도 없는 열두 살 자식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아비에게 저는 왜 감정이입이 안 될까요. 제가 너무 속물적이라 경건함과 순교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까요. 순교당한 이들을 비난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지극히 폭력적인 방식과 동행하는 종교의 역사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심적으로 즐기며 읽을 수 없는 내용이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각자의 전투함들을 배치하고 총질을 하는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 두 아이는 오갈 데도 없이 모든 것을 겪어내야 합니다. 살기 위해 끝까지 애쓰고, 엄청나게 의지가 강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방식의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이런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인 일이었을까요.
1866년 1월 병인박해, 1866년 9월 병인양요, 로 기억하던 사건들을 한 가운데서 휘말리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으니…… ‘혼란과 고난과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들의 우정’ 이런 표현에 화가 납니다.
“죽을 바엔 뭐라도 값진 일을 하고 싶어.”
“형을 위해 내가 미끼가 될게.”
약간의 합리성을 갖춘 얄팍한 저와는 달리, 죽음 앞에 내몰리면서도 인간다움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은 언제나 계셨겠지요. 어리게만 보이는 이 소년들 역시 우정과 용기를 잃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작은 꿈만 꾸는 저는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상황들이 달갑지도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강화 여행길에는 그곳에서 지극히 애쓰며 살아 간 어린 사람들 생각이 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