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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민경욱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평점 :
‘마음의 피로’가 피로할 정도로 자주 문제가 된다. 호르몬 탓이야, 라고 자가진단을 내린다한들 도움이 크게 되지는 않는다. 작년부터 물건을 줄이겠다고 결심한 바대로 조금씩 실천하고는 있지만, 어째서인지 선택지가 여전히 많아 고민이다. 일상의 고민거리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도 신경을 찔끔찔끔 피로하게 만든다.일단 더 의식적으로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자!라고 일요일마다 하는 결심을 또 하고 나니, 물건들 빼곤 이미 활동은 지극히 단순하게 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일하고 읽고 쓰고, 메인은 세 개 뿐!
최근에 쓰인 책이면 더 좋았을 텐데, 2019년 원작 출간일이라 조금 아쉬웠다. 지금 내가 하는 거의 대부분의 고민들은 2019년 이후의 상황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운이 좋아 온라인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의 삶의 면면을 엿보다(?) 보면, 당사자의 심정을 절절하게 다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매일 애쓰시는 일들을 불만과 짜증 없이 해내시는 모습들이 참 부럽고 존경스럽다.
속고 사는 일이 싫어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가능한 모든 정보를 찾아보는 습관이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정보를 알아볼수록 불만과 짜증이 커진다.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사회적 비용도 아깝다. 제발 별 것도 아닌데 시스템이 적당히 잘 돌아가게 만들 수는 없는 건지 화가 치민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회는 여전히 후진데 말마다 K-를 붙이는 것도 공동체 소속감을 강하게 해서 판데믹을 이겨보자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지긋지긋하다.
어제는 영국에 사는 친구가 화들짝 놀라서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 친구의 하소연을 전해주었다. 경기도와 서울에서 ‘외국인 의무 검사’를 시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설마…… 이런 파쇼적이고 차별적이고 무지한 제안과 시행을 하겠다고 지자체가 공식 발표를 했다니! 얼마나 놀랐는지 오랜 친구를 잠시 살짝 의심할 뻔했다.
다행히 서울시는 철회했다고 하고 경기도는 아직 모르겠다. 유학 중에 내가 ‘외국인 한정 의무 검사’ 정책의 대상이었다면 나는 사방팔방에 알리고 UN에 해당국가를 고발했을 것이다. 2021년 한국의 일면이다. 이러니 차별금지법조차 시기상조라는 말이 나온다.
어쨌든 ‘외국인’이라 칭하며 ‘외국인 노동자’를 설핏 떠올리고 맘대로 모욕할 수 있겠다 생각한 모양인데, 그 ‘외국인’에는 상전처럼 떠받드는 다른 이들도 있었을 테고, 대사관이나 외교관들을 통해 수많은 불만 접수와 항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만에 낯이 뜨거워지는 수치심을 제대로 느꼈다.
그래서 누적된 피로감과 불만과 짜증과 새로운 수치심에 지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근래에 심리학이나 인지과학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이제는 대략 공통적인 내용은 넘어가게 되었다.
생활습관 루틴화. 루틴이 명확할수록 에너지 낭비는 줄어드는 것이 확실하다. 분노 강도 기록. 뒤끝조차 귀찮아서 안 한다 생각했는데, 한번 기록해보면 기억을 뒤집어보니 오래된 분노가 등장해서 놀랐다. 덕분에 해묵은 감정이 시시해졌다. 일해야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힘들 때, 뭘 하고 싶은 거지? 라고 묻지 말고 뭘 하고 싶지 않은 거지? 라고 묻는 법. 마음이 완전히 이탈하지 않고 집중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는 시작해보는 시늉만 내본다. 가끔은 흉내 내다 가속이 붙어 일이 잘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해치우는 건 그나마 잘 하는 일이다.
제일 재미있는 내용은,
‘주말에는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지.’
이래서는 도무지 기분을 전환할 수 없답니다. 적극적으로 뭔가 하는 형태로 기분을 전환해야 마음이 한결 후련해집니다. 찰흙은 망가지거나 없어지는 일 없이 계속 가지고 놀 수 있으니까 ‘가성비’ 측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기분 전환 도구가 될 겁니다.
찰흙 주문할 마음이 생길 뻔! 일본엔 주말에 찰흙 놀이하는 이들이 꽤 되려나 상상해보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도 제안한 ‘감정의 객관화’ 훈련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중계하듯 지켜보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나처럼 중계 실력이 뛰어난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중계를 편안히 관람하는 방법도 있다. 나는 정말 별별 일에 다 책에 의존한다 싶은 기분도 들긴 하지만. 글이란 말보다 객관화된 수단이라 읽고 쓰고 나면 적어도 부글거리던 마음은 확실히 가라앉는다.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모든 스트레스에 내성이 약해집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니까 좀 더 사랑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근래에 읽은 이웃의 블로글과 연관되는 “100% 순수하고 고결하려는 집착을 버린다.”란 강박으로 작용하는 통념을 뒤집다는 이야기가 있어 반가웠다. ‘순수’란 완벽하게 관리된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물질 이외에 없는데, 이 단어는 왜 사방팔방에 나타나고 위세를 부리고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환영받기도 하는지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순수’를 언급하는 이들의 의도가 ‘불순(수)’하다고 느낀다.
세상에는 사기꾼같이 지독한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들의 고민을 파고들어 고액의 상품을 팔려고 하거나 이상한 종교를 권유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자신의 고민은 스스로 해결한다’라는 기본자세를 지키세요.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런 선한 의도로 집필하셨다니 덕분에 날을 세웠던 마음이 덩달아 착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