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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아르헨티나 작가의 국내 첫 출간작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카를라의 아들인 다비드와 니나의 엄마 아만다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상황 설명이나 묘사는 없다.
대강 짐작만 해보면, 아름답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휴식이 되는 자연이란 없다는 익숙한 환상과 오해를 역전시키는 배경은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도시에 살다 시골로 온 모녀가 죽게 되는 이유가 벌레인 듯하다. 잘 몰라서 주의하지 못했던 작은 상처가 치명적인 불행으로 치닫는 일. 다비들의 엄마 카를라도 도시에서 왔고 자식을 잃었다.
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 중략. 그 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 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 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가변적인 ‘구조 거리’라는 개념이 낯설어서 원제를 찾아보았다. Fever Dream (Samanta Schweblin novel), a 2017 English translation of Distancia de rescate. 그러니까 이 책의 스페인어 원작의 원래 제목이 Distancia de rescate, 즉 “Distance to rescue”이다. 일반적으로 “rescue distance”란 표현을 사용하니까 이걸 한국어로 번역하면 ‘구조 거리’가 된다.
그러니까 아만다는 닥칠지 모를 미래의 재난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읽으면서 그 재난 조차 피버 드림, 즉 고열로 인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인지 실제인지가 헷갈렸다. 어쨌든 그는 죽어가면서도 딸인 니나를 구하러 갈 생각에 사로 잡혀 거리를 계산하는 중이다. 시골 병원에 누워 공황 상태에 빠진 아만다는 다비드에게 계속해서 니나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 이 긴장과 불안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이다.
챕터도 섹션도 없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아만다의 시점이 이어지는 책, 어제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단편을 잃고 어렵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했는데, 다시 입장을 바꿔야할 것 같다. 이 의식의 흐름은 강박이 느껴질 만큼 강렬하고 밀도가 높고 계속 읽게 되는 힘은 있지만 이해가 쉽지 않다. 그 점에서 피버 드림이란 제목이 뜻밖에 위안이 된다. 독자인 나 역시 열병에 시달려 허둥대는 입장이라 변명하고 싶어지니까.
낯선 곳에서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구할 수 있는 거리에 자신의 열에 들뜬 의식이라도 놓아두려는 끊임없이 집착하는 부모의 모습은 원인도 배경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이 아팠다. 내 자식은 내가 구할 수 있다는 혹은 구하고 싶다는. 그런 희망조차 판타지이고 현실은 스릴러와 호러의 혼재라고 냉정하게 누군가 평한다면 완전히 반박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아픈 마음을 다해 구조 거리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의 열병을 치르는 것과도 같은 힘겨운 삶을 늘 응원할 것이다.
오독인지, 이해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독자로서 어떤 식으로든 감정에 빠졌다 헤어 나오게 하는 힘만으로도 문학으로서 만난 기쁨과 감사함은 언제나 있다. 첫 만남이라 하더라도 구성과 서사가 대단히 독특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스페인어 원제로 방영예정이라고 하니, 마테차를 따끈하게 혹은 시원하게 마시며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