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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 -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2월
평점 :
트릭 미러,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지아 톨렌티노
Trick Mirror, Reflections on Self-Delusion, Jia Tolentino
국내외 추천사 라인업이 어마어마해서,
* 강화길, 김금희, 김하나, 이길보라, 이다혜, 이슬아, 장혜영, 황선우 추천
*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_리베카 솔닛
*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_〈워싱턴포스트〉
* “문화 비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마스터클래스”_록산 게이
데뷔작인 ‘에세이’가 최고의 문학작품의 위치에 오를 수도 있는가 살짝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추천을 너무 자주 받아서 오히려 망설이게 되었던 책, 추천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읽어 본다.
“트릭 미러(왜곡이 있는 거울)는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자기 형벌이 된다.”
그 문장이 나 개인에 대해 설명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이제까지 내가 주워 먹을 빵 조각을 뿌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나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몇 년은 걸릴지언정 가치 있는 과정이라고 믿으려 한다.
우리 모두 인터넷이 한때는 나비였고 연못이었고 꽃다발이었던 때를 기억하고... 다시 한번 변하여 우리는 놀라게 하고 다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기다린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은 인터넷과 교류하는 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이득을 취하는 구조다. 미래의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박해질 것이다. 나의 일부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재난을 함께 마주 보고 해결해가는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나도 사라질 것이다. 아티스트이자 작가인 제니 오델Jenny Odell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How to do nothing>에서 주의 산만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썼다. “집중하거나 소통하지 않는 사회 집단은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하지만 여성이 결혼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아이를 낳고 기타 등등을 모두 한다 해도 여전히 그들은 결핍되어 있다고 하면서 솔닛은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긴다. “여성이 되는 데에 정답 같은 건 없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기술은 그 질문 자체를 어떻게 거부하느냐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떤 목적을 문학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얼마 후 솔닛은 여성이 오직 가정에 속박되는 결정을 하는 것도 문학적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단 하나의 줄거리만을 받았는데,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나쁜 삶을 살게 되는데도 그러했다. 우리는 하나의 모범적인 플롯에서 하나의 행복한 결말이 나올 것처럼 말하지만 무수히 많은 삶의 형태가 우리 주변에서 피고 또 질 수 있다.”
밀레니얼 시대에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은 착취할 수 있는 모든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현금을 쥐어짜내어 사회 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버와 에어비엔비 또한 비슷하게 “파괴적”이다. 아마존이 주 판매세를 무시한 곳에서 우버는 지역 교통법규를 무시했고 에어비앤비는 규제받지 않는 호텔에 대한 법을 무시했다. 중략. 이 기업들 성장의 가장 큰 돌파구가 무엇인지 못 보게 한다. 즉 이들이 후기 자본주의의 치열함과 스트레스를 성공적으로 자본화했다는 사실이다. 회사가 아니라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이 경쟁하게 하여, 노동자와 소비자가 이 기업이 져야 할 책임과 리스크를 부담하는 패러다임을 일반화한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뉴욕시의 이용자들에게 아파트를 빌리는 건 위법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우버 또한 아마존처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최대한 낮추었다가 결국 올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아무 장이나 펼쳐 필사를 해본다.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이라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라고 리베카 솔닛은 평했지만, 나는 톨렌티노의 통찰보다 솔닛을 인용한 문장의 통찰이 더 와 닿는다. 재미있는 변화구가 여러 개이지만 묵직한 직구는 없는 느낌. 아주 새로운 통찰은 없지만 경험과 연결 지어 쉼 없이 이어지는 문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듣기 좋았다. 간혹 내용보다 문체로 인해 멈칫거리는 경우들이 있는데, 조금은 그런 점도 있다. 부제도 원제가 훨씬 좋다. 왜 이런 중요한 부제를 지워버리고 저런 평범한 부제를 정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Randomhouse의 출간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쓰다 보니 트릭에 걸려 자꾸 심사가 어그러지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톨레티노가 지적했듯이 내 자아는 내 관심사 외의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을 지도. 혹은 자기 기만적인 모습을 전혀 감추지 않은 타인의 혼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불편해하는 내 자아가 보이는 소심한 거부 반응일지도 모른다. 고로 나는 밀레니얼 여성이 아닌가보다 싶다.
자신의 통찰에 대해 용감하게 그것도 냉소적으로 가차 없이 거침없이 집요하게 성찰하고 그 모든 것을 서늘한 열정이 느껴지는 문장들로 써낼 수 있다는 것이 탁월함이고 가치 있는 에세이 문학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모든 찬사가 잘 어울리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못하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내는 이들이 언제나 많으니 내가 찾은 이유들로 현재나 미래를 포기하거나 절망할 이유는 전혀 없다.
몽테뉴와 인터넷 세대의 모랄, 리얼리티 쇼에 대한 해부학과 같은 글이 있다는 평을 들었다. 다음번엔 좀 더 흐름을 함께 즐겁게 타는 기분으로 잘 읽어 보고 싶다. Until Next time, leave me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