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S. K. 본 지음, 민지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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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요죽음은 해결할 수 없어요삶이 있다는 것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장밋빛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SF 작품은 드물지만이 책의 원제를 보면 그 중에서도 우주 공간을 미지의 두려운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짐작이 된다Across the void, void란 단어는 과학적 사고를 유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비어 있다는 것만으로 피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허를 느끼게 한다물론 책을 제대로 읽기 전의 느낌일 뿐이다.

 

영원함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모든 것이 헛되게 보이는 법이다

허공은 상대적으로 원시적인 인간의 뇌에 그러한 영향력을 갖는다.

 

독자가 느끼는 느낌과는 별개로 주목할 점은 작품 속 인물들주인공이 처한 입장이다저 빈공간을 가로질러 미션을 완수하고 귀환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극한의 어려움과 고난이 가득할 것은 자명하다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계절감을 잃어버린 이상한 날에 목요일처럼 한껏 지쳐서현실의 뉴노멀을 고민하는 시간은 유예하고 작품 속으로 피신해본다.

 

이 작품 속 현실 반영이 유용한 해석 툴이 될 지도미래의 모습이 영감이 될 지도과학기술이 열쇠가 될 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하며과거도 미래도 긍정도 부정도 혼재하는 자유로운 시공간 속의 세계에서 느긋하게 저자가 보는 미래 사회의 삶의 방식가치성찰을 엿보고 싶었다왜냐하면 이 소설의 배경은 아주 먼 미래가 아니다. 2067경우 46년 후의 이야기이다.

 

나사의 임무 수행 중 유일한 생존자의 귀환즉 재난 속 인간의 모습을 통해 가능한 갖가지 이야기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S.K.VAUGHN이라는 필명의 저자는 각본가이자 영화제작자로서 스릴러 소설을 이전에 발표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 역시 반전과 스릴러적 재미가 충분하다. SF적 상상력은 워낙 좋아하는 소재들이고 나로선 SF작품 내에서는 반가움보다 염려가 드는 로맨스 설정도 애틋한 면이 없진 않다.

 

모든 사랑에는 궁극적으로 희생이 따른다중략

주요 문학작품의 주인공들도 유사한 운명을 따랐다

왠지는 모르지만 낭만적인 사랑은 운명적 배신에 맞서 싸우는 전쟁터와 같다.

 

어머니는 남자와 장기간 교제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했다

어머니는 항상 그런 일을 방해’ 요인으로 간주했다

위스키라도 한두 잔 마시면어머니는 이 방해’ 요인이 꿈을 죽이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니 메이가 누군가와 오래 교제를 하고 결혼까지 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흑인 공군 어머니의 영향으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자라 유로파 탐사미션 충지휘관이 된 주인공직업적 압박감임신남편과 불화유산관계의 삐걱거림우주에서의 사고이렇게 갈등은 복합적이고 치밀하다.

 

2067년 크리스마스.

어두운 우주공간을 떠도는 난파된 우주선에 성탄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의식을 잃고 깨어난 선장이자 단기 기억 상실증까지 걸린 유일한 생존자 메리엄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나사의 우주기지에서 유로파 미션을 지휘했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이다스티븐은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에 있고주선 내 통신장치에서 흘러나오는그의 목소리가 유일한 희망이다. ‘이브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 가는데... 어떻게 될 것 같나요?

 

그들은 나를 믿지 않아

메이는 생각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그 대신 수많은 질문과 의심을 받는다.

 

외우기 힘들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들도 없고 지나치게 복잡하고 산만한 서사가 많지도 않고 유쾌하게 잘 읽을 수 있는 세련된 작품이다유치하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코스모스유니버스스페이스(우주공간)라는 용어들은 자주 사용했지만갤럭시라는 용어는 또 오랜만이다문득 휴대폰 상품명으로는 잘 안 어울리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작명 의도나 철학 같은 게 있었나 잠시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사에서는 늘 광활한 우주공간보다 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곳은 없다고들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의 무한함진공의 냉기와 지독한 고요를 결코 품을 수 없다고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커진다

그 갈망은 사람을 돌아버리게 할 수도 있다.

 

언급했듯이 먼 미래가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주인공의 입장에 가깝게 느끼며 읽었다준자가격리에 준하는 생활을 한 지라그 재난이나 이 재난이나재난의 모습은 개인을 얼마 안 되는 사적 공간에 가두는 모습으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오늘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매일 살 수는 없지만결국 지금오늘현재 하나만 남는구나 싶기도 하고메리엄이 귀환한 지구는 이 지구가 아니었음 하는 생각도 든다


꽤 늦은 시간인데 머리가 띵울리는 맥주 생각이 난다잠시지만 느긋하게 행복했고 재밌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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