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 이야기를 통해 보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
어맨다 레덕 지음, 김소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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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부재하거나 부족하면 사고는 한 치도 확장될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한다잠시 느끼는 개인적인 민망함은 차치하고 그런 깨달음을 주는 연구와 성찰의 결과물들이 내게까지 도착하는 현실이 늘 반갑고 감사하다획득한 언어가 구성한 사고의 겉껍질은 때론 상상 이상으로 단단해서 내부에서 껍데기를 파쇄하려고 두드리는 이해력과 상상력이 있다고 해도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다 쓰고 나니 언어를 통하지 않은 이해와 상상이 가능할까싶어 사고 오류인 것도 같다어쨌든 요점은 새로운 언어 표현이 의식 변화에 필수라는 것이 책이 내게 가진 가치와 의미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https://www.ox.ac.uk/news/2018-12-20-newborn-insects-trapped-amber-show-first-fossil-evidence-how-crack-egg



약자들을 위로하는 방법들 중에는 일 년에 하루 기념일을 내어주는 일도 있다마침 오늘은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이다어린이여성장애인……이 놀라운 책에 따르면 인간이 태어나 말과 글을 배우고 처음 접하는 이야기인 동화들에 이 모든 약자들을 비틀고 주저앉히고 제한하고 좌절시키고 죄책감을 씌우는 시각과 이데올로기가 가득하다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들이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 혹은 여성들을 등장시켜 서로를 향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만들어내는 산실이라니.

 

<소란>의 저자 박연준 시인이 간곡히 추천한다는 문장들의 진정성이 절절해서 다 읽기 전에는 시인이 지적한 의식의 지각 변동이 가져올 실제 충격에 무감했던 것 같다오랜 세월 층층을 이루던 한 세계가 갈라진 지각처럼 동화의 건물들 털어내며 무너져 내렸다기억하는 동화들의 색채들은 부옇게 바라고 이야기들은 부서져 날린다슬프고 후련하다.

 

병에 분명한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가혹한 일은 없다.”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뇌성마비로 인한 장애를 가진 저자가 냉철하고 말끔하게 풀어가는 동화의 이야기는 반드시 당사자주의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고 해도 비장애인들 실제로는 여러 장애가 있지만 등록 부재인혹은 노화를 겪으며 언제든 장애가 생길 수 있는 역시 동화의 세계에서 저자와 당시의 시대와 오늘날의 세상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혼란 없이 차분하게 잘 이해할 수 있다논란과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인정하고 만다는 점 또한 슬프다무지와 의도와 곡해가 버무려진 이야기 모형들을 우리 모두가 어릴 적부터 읽고 듣고 말하고 전하며 살았다니.

 

이야기는 그런 문화에도 불구하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이기 ‘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도 계속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진짜가 된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사회가 해야 할 일들은 많고 그 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이기도 하다단 그런 변화는 단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끈질기게 변화를 요구하는 동안 각자의 사정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시간을 견디기가 좀 더 수월해지는 경우도 있다자신의 불편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정말 좋다도착지가 어린이여성장애인 그리고 독자인 우리들을 향한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릇된 시선을 바꾸는 것이라면.

 

내가 일상에 머물며 사적 공간을 유지하는 일에 체력의 대부분을 쏟고 사는 시간에도멈추지 않고 포기하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오신 분들이 아주 많을 거라 늘 믿는다세상은 저절로 바뀌는 법은 절대 없고뭐든아무리 작은 변화도 누군가가 애써 바꾼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기회가 될 때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오늘지금현재도 덕분입니다이 책의 저자 어맨다 레덕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나이가 들수록 드물고 귀하게 경험하는 내가 딛고 선 지반을 흔들어 부수는 작품을 주셨으니.

 

그의 바람대로 멀지 않은 미래에 휠체어 탄 공주 이야기가 있기를마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식하고 바깥을 봄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에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친 남자의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이 책을 읽고 당혹스럽게도 토니 모리슨이 강연에서 한 말 을 모은 책 <보이지 않는 잉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써진 게 없다면 바로 당신이 써야 한다.”

 

정답!은 맞지만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지만도저히 그럴 깜냥이 안 된다할 수 있다면 왜 안하겠는가.

 

온라인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분류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나는 이들의 재능을 펼칠 무대를 사회가 감당할 수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그래서 누군가는 분명 어맨다 레덕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멋진 작품으로시원하고 후련한 새로운 동화를 세상에 데려와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어느 시점부터 세계의 모든 아이들은 더 이상 어린이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어떤 모욕과 폭력도 가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거의 모든 내용을 필사발췌하며 읽어서 아예 내용 설명을 다 뺀 얼렁뚱땅 글을 올린다이 책이 궁금해지길읽게 되길생각을 글로 써보게 되길그래서 널리 회자되길 바라는 마음이 무척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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