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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평점 :
20세기, 20대에는 아도르노란 철학자의 철학책 읽기가 무서웠다. 도저히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을 만큼 친한 친구가 굳이 학위 논문으로 아도르노를 저만 즐겁게 다룰 때에 이런 저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억지로 배우게 되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자발적으로 아트앤스터디에서 김진영 선생님 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무려 한 세기가 지나서인지 더 이상 막 무섭지는 않다.
차곡차곡 기억에 남았다고 자랑할 내용들은 안 떠오르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상처는 다양하고 깊고, 통증의 간격에 겨우 숨쉬고 사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도 같다. 어쩌면 더 지독한 통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애써 익힌 적도 없는데, 반가운 기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천천히 필사하며 찬찬히 잘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70 여 쪽 읽었나…… 하는 10분의 1정도의 분량입니다. 그러니 이 포스팅을 읽으시면 도입부를 읽으신 겁니다. 이제 책을 본격적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아도르노의 사유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다’라는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총체적 부정성으로 그는 안티 아도르노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도르노의 중요한 명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제들>
- 삶은 살고 있지 못하다
- 잘못된 삶 안에 올바른 삶은 존재할 수 없다
- 모든 것이 거짓이다
- 문화는 쓰레기다
- 모든 것이 자연의 표현이다
- 모든 것이 거짓인 사회에서 진실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 가장 자연일 때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며, 가장 역사적일 때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 되돌아가는 일은 퇴행일 뿐이다
- 이론이 실천이다
모럴이란 걸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냥 우리 삶의 뜻, 의미예요. 우리 삶이 파괴되었음에도 삶의 의미가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니, 그것들을 발견해내고 추출해내고 이론화하려는 안타까운 작업이다, 이런 식으로 <미니마 모랄리아>를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책의 제목이 가지는 본뜻이란 우리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최소한의 도덕도 전제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이 끝까지 은폐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 ‘미니마 모랄리아’ 때문이라는 거죠. 그것들이 늘 가로막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런 게 있겠지’ ‘이 정도는 있어’라는 것들이 마지막 은폐된 진실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유혹이라는 거죠.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인식의 딜레마예요. 알고 나면 이미 늦었어요. 미리 알 수 있냐고요? 안 됩니다. 아도르노가 절대로 긍정성을 선취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같은 의미죠. 그것은 경계를 넘어가버린 쪽에 잠재태로서 있는 것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해요.
우리의 사유가 ‘미니마 모랄리아’라는 도저히 걷어찰 수 없는 마지막 긍정성을 걷어차고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진리 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다, 라는 의미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경계선을 넘어서야 되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것이 ‘미니마 모랄리아’, 즉 도저히 버릴 수 없는 ‘한 줌의 도덕’이 아닐까라는 거죠.
우리가 과연 긍정성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언제나 사실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는 욕망을 봐요... 아도르노는 과감하게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합리성에는 그것을 넘어설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알아야 될 마지막 것을 알게 만드는 것은 절대로 무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다.”
실제 우리 삶의 풍경은 어떨까요? 상처투성이라는 거죠. 상처의 정의가 무엇이죠? 패어 있음이에요.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그것이 상처가 되는 거예요... <미니마 모랄리아>의 부제가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입니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하실 게 아니고요, 엄청난 고통의 발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아프고 슬프고 두려운 것인지를요.
우리가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일은 굉장히 두려운 거예요. 다들 안 보려고 하잖아요? 무의식은 도망가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돌려버려요. 그래도 살 만하지 뭐, 나는 남보다는 낫잖아, 이런 쪽으로 슬쩍 건너가는데 이 상처를 마치 지진계처럼 들여다보면서 그 안의 풍경을 꼼꼼하게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이 아도르노에게는 합리성이라는 것이죠... 사유란 굉장한 거예요. 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에요... 우리의 사유가 방해받지 않고 가고 싶은 지점까지 간다면 어디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는 겁니다. 사유는 그렇게 무섭고 강력한 거예요. 그런데 정치가, 경제가, 문화가 끊임없이 중간에서 사유를 차단시켜버리죠.
아도르노가 <미니마 모랄리아>를 쓰면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믿음이 사유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로지 그 믿음만으로... 그것을 통해 우리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읽어 보겠다는 것이 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