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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 - 인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
김경훈 지음 / 시공아트 / 2021년 2월
평점 :
이 책은 사진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진 속 이야기는 때로는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 때로는 그 이야기가 오해와 편견 속에 읽히기도 하며 때로는 고의적으로 혹은 악의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사진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 타임캡슐이 되어 훗날 역사의 증거가 되기도 하고, 사진 속 많은 이야기는 때로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기도 합니다.
살면서 나만 모르는 베스트셀러들은 많고 많지만, 개중에는 나중에 알게 되면 통증처럼 느껴지는 책들도 있다. 또네, 또. 이런 한탄이 절로 소리가 되어 나오는 책, 이 책의 저자인 김경훈 로이터 통신 사진기자의 첫 번째 책은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이다.
개론 강의를 듣고 심화 과정에 도전하는 기분으로 두 권의 책을 펼쳐보았다. 무척 노련한 교수법을 가진 사진작가는 사진 보는 법이 아니라 ‘읽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고, 다음엔 한 수 더 나아가 사진이 (직접) ‘말하고 싶은’ 것들, 이란 멋진 제목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현실이 아니라면 흥미와 재미만으로도 즐거운 이야기들이지만, 현실이라 때론 숨을 삼키고 입술이 마르는 긴장으로 심각하고 흥미롭게 읽게 되는 책이다.
‘사진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해놓고, 내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보다 저자의 유려한 말과 글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문다. 재밌기도 하고 살짝 이율배반적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을 가장 정확하고 아름답게 전달하고픈 저자의 애정이라 믿는다.
뇌의 기능이나 인지 과학 - 혹은 양자역학 -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성과 진실성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뇌의 프로페셔널한 왜곡 시스템과 - 고의로 그런 건 아니고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패턴을 만들어 대략 맞춰 판단하지 않으면 영원히 정보 분석만 하면서 아무 판단도 못하게 되어서 그렇다 - 기억력이란 내편인 듯 내편 아닌 능력은 이런 고민에 든든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프로세스의 약점을 동결하듯 순간의 진실로 실체화 시킨 사진이라면 가장 사실성에 근접해야 마땅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주체가 다시 인간이라 또 다시 위의 오류체계에, 해석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영원히 존재한다. 더구나 사진에 찍힌 순간의 전후 맥락을 볼 수 없는 우리로서는 사진과 짐작만으로 스토리를 완성시키고 상황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좀 더 차분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할수록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경우들 중 사진의 피사체가 된 인물에게 실질적인 고통이 가해진 경우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은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대, 누구나 찍을 수 있고 찍힐 수 있는 시대이다.
또한 디지털 사진의 복제와 무한공유는 유통속도가 빛과 같이 빠르다. 디지털 장의사라는 신종 직업에서 의뢰인의 디지털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 검색 0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디테일들은 사진이 촬영된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환경에 의한 영향 그리고 사진을 보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관점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됩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의 개입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사진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진기자로서 저자는 얼마나 고민이 많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척) 해본다. 어쩌면 그 어려움을 위무하고자 저자는 이 책에서 이토록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으로 그간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5년부터 2020년까지 백여 년에 걸친 다양한 사진들을 한 이야기로 수렴하며 논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비범한 능력이다. 20여 년간의 현장 경험이 단단한 지지대로 기능하는 듯하다.
미국의 보도사진가 제임스 나처웨이는 중략. 그의 사진 한 장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줄 수도 없고, 사회를 바꾸어 놓을 힘도 없지만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관심을 원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사진을 악용하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원하던 관심과 돈을 얻는 한은. 하지만 우리는 이미지의 소비자로서 그 범죄를 중단시킬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관심과 돈벌이가 되지 않게 잠시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판단하고 행동하면 된다. ‘좋아요’를 누르고 ‘업로드’할 것인지 아닌지를.
이미지를 소비하고 촬영대상에게 무례하고 왜곡을 위해 의도적으로 혼란을 부를 장면도 가능하고 아예 이미지 자체를 조작하기도 하는 시절의 인간 사회, 사진작가가 아니라 사진‘기자’로서 사진의 역할에 진지하고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는 태도는 귀중하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언론 신뢰도가 밑바닥인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시사성과 사회성과 현실성을 모두 갖춘 책을 만난 덕분에 지식정보도 시선도 이해도 판단도 조금씩 좌표를 이동했다. 늘 그렇지만 긴 사족 같은 내 말을 적느라 책의 100분도 소개 못한 내용이다.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김경훈 기자의 중요한 이야기들이 담긴 사진들에는 늘 말하고 싶은 의미가 풍부하길, 역사의 기록 그리고 역사 자체로 불멸의 생명력을 얻길 응원하고 싶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02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