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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제목과 표지에 홀렸다.
저항도 부정도 하기 싫을 만큼 홀린 상태가 좋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불러도 보았다.
자꾸만 기대와 상상이 부풀어 올랐다.
혹시나 짐작만큼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지 않다면
기꺼이 스스로 양념을 더하겠단 괴상한 다짐도 했다.
그런 다짐이 불필요할 만큼 8개의 단편들은
새로운 시공간의 반짝이는 조각들처럼 생명체들처럼 유영하고 교차하며 정신을 들뜨게 한다.
오래 전 영국 어느 거리에서 마녀처럼 보이는 점성술사가 별점을 봐주며,
내게 필요한 건 ‘땅에발딛기grounding’라고 당부를 했다.
아니면 너는 아이디어와 뇌 속에서만 살게 될 거라고,
SF의 한 장면처럼 들뜨고 불쾌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첸카’라는 이름의 그가 마음에 들었고,
확실한 호의에서 전해 준 이야기도 감사하고,
재밌기도 해서 그 기억을 소중히 잘 담아 두었다.
우다영 작가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을 읽으며
마치 기억상실에 걸린 양
그 당부를 모두 잊고 혹은 배반하고
걱정도 불안도 염려도 없이 신나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듯했다.
긴 호흡을 들이 마시며 후읍~
능률이 점점 떨어져 매일 야근을 하는 기분이 드는 우울한 일상에 틈을 열고,
꿈과 마법과 소원이 가득한, 때로는 간절한 것들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그런 세상으로 들어가 보았다.
부디 불가해한 문장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다 읽어 버리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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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할머니, 할머니."
"나를 불렀니?"
"네,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어린 남자아이들이었다. 그 애들은 한곳에 모여 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 섬에서는 어딜 가나 세 명 이상 모이면 내기를 벌였다.
"누가 가장 특별한 아이인지 골라주세요."
"그러자꾸나."
세 번째 아이는 쌍둥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떠한 유전적인 요인으로 그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일란성쌍둥이였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똑같은 얼굴의 쌍둥이가 하나 더 있었다. 모든 임산부가 쌍둥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유산율도 높았다. 태어나면서 하나가 죽으면 살아남은 아이에게 진흙으로 만든 아기 인형을 선물했다. 인형을 평생 돌보며 비어 있는 영혼의 반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쌍둥이가 아니었어요. 모두가 단독자인 내 존재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죠."
나는 세 번째 아이의 동그란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 세계의 비밀을 알려주리다."
노파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주름진 얼굴을 내 귓가에 가까이 가져다 댄 뒤 속삭였다.
"누구나 언젠가 도착하게 되는 텅 빈 해변이 하나 있어."
노파는 노래하듯 계속 말했다.
"누군가는 해변에 앉아 잠시 머물다가 떠나고, 누군가는 해변을 산책하듯 천천히 지나가고, 누군가는 오랜 세월 해변을 헤매고, 누군가는 해변이 마음에 들어 집을 짓고 살고, 누군가는 자신이 해변을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누군가는 자신이 해변에 도착한 줄도 모르는 채 거기서 평생을 살고, 간혹 수평선의 석양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해변을 헤매기보다 해변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