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엔 노스탤지어가 흐르고
김효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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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물감과 팔레트를 꺼내들고 싶게 만드는 참 아름다운 표지 색감이다이렇게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구도에 늘 끌리는데장면이 시선이 끝나는 곳에서 더 나아가려고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그 간절한 느낌이 좋다할 수만 있다면 계속 이대로 끝까지 걸어가고 싶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코로나가 끝나면 내겐 별 흥미와 의미가 없었던 산티아고 순례길 조차 즐겁게 걸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다매일 일하다 다치고 죽는 이들이 있는 현실에서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기도 하지만갑갑하고 답답하다기상과 동시에 베란다 창을 활짝 열고 앞에 바짝 붙어 서서 심호흡을 열 번 정도 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매년 토정비결을 보고 좋은 내용이 있으면 신이 나서 챙겨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올 해 내용을 받아만 두고 아직 안 읽어 봤다내용이 아주 길다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사주도 봐줬고 유학 가기 전 명성이 자자한 동대문 어디의 유명한 점집에서 점도 봐줬다그래서 알게 된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아주 강했다세 마리 말이 끌고 달리는 사주라나 - 삼두마차!라며 좋아했던 기억이 젊은 시절 가족 떠나 집 떠나 고향 떠나 나라 떠나 오래 돌아다니며 살겠다는 풀이였다.

 

사주를 보기 전 미리 계획된 것이긴 했지만 공항 멀미가 날 만큼 돌아다니긴 했다십대 때에도 이왕 태어난 거 지구를 다 둘러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그래봐야 지구의 동동 뜬 섬 위를 오종종 일부 다닌 것뿐이지만이 책을 읽으니 예전에 할 일 마치고 은퇴해서 유유자적한 세 마리 말에 고삐를 슬쩍 다시 매고 싶은 기분이 든다.

 

호모 바이에이터.

 

여행하는 존재.

 

살다가 큰 배반감을 느낀 적이 있는데그 중 하나가 세상에 여행가라는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 순간이었다잠시 눈을 의심했다분했다이런 직업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모르고 전형적인 직업군의 세계에서만 선택지를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웠다그러다 여행을 하는 것만이 직업을 모두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행가란 직업은 어떤 일을 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게 별로 없어 금방 자신감을 읽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복잡다단한 이유들로 현재의 나는 여행기 읽기를 좋아한다모든 여행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선택 가능한 스펙트럼은 남부끄러울(?) 정도로 넓다아무래도 정보보다는 여행가이자 저자의 생각과 필력이 충분히 포함된 책들을 읽을 때가 아쉬움이 적다여행이라는 행위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 하며 둘러보는 혹은 살아 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여행지 거주민들의 이야기나 여행가의 체험이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저자가 평화구현 세계민박단체 서바스 SERVAS’에 소속되었다는 점이다http://www.servas.or.kr/ 찾아보니 한국서바스 홈페이지가 존재한다행정안전부 주관 비영리민간단체(???)로서 나로선 모순되는 듯해 재밌고도 헷갈리는 설명이긴 했지만 정부기구가 주관하는 비정부기관이다혹시 아니라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명칭에서 쉽게 짐작하시듯 서바스SERVAS는 서비스Service, 에스페란토어*로 봉사를 뜻하며사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종종교문화를 초월한 지구 평화를 원하는 단체이다서로가 호스트와 게스트로서 서로의 집을 방문할 수 있다이것은 내겐 엄청난 도전일 듯하다사적 공간에 대한 집착이 어느 고양이보다 강한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언젠가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렇게 호방한 일도 해보고 싶다.

 

에스페란토Esperanto : 

 

1887년에 폴란드 안과 의사 라자로 루드비코 자멘호프(Lazaro Ludoviko Zamenhof, 1859~1917) 박사가 창안한 배우기 쉬운 국제 공용어이자 가장 대표적인 인공어이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주의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다른 민족과는 중립적인 국제공용 보조어 에스페란토를 사용한다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에스페란티스토'라고 한다에스페란토어를 상징하는 것은 초록별로서 초록색은 평화를별은 희망을 나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내용 중 일부 발췌).

 

세상에 나와 5분이 지나면

생명줄의 서맥은 스스로 멈춘다.

탯줄이 잘리는 순간,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되었다.

 

배꼽의 탄생이다.

 

지구의 배꼽 중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영화를 안 봐서 몰랐는데그 영화의 주인공들이 애절하게 가고 싶었던 곳이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호주의 울루루라고 한다젊을 때 도전해볼 수도 있을 일이나백혈병까지 앓는 첫사랑과 함께 행복하게 경험할 장소는 아닌 듯하다무덥고 파리들이 떼 지어 덤비는 황량한 고지대 사막…….



독박육아로 아이를 수년 간 키우다 제대로 미칠 것 같아 한 달 휴가를 받아 저 멀리 호주로 한 달 떠난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로는 대도시를 제외한 호주는 아프리카보다 더 험하고 불편한 땅이라 했고 사막 비율만 봐도 해안가를 제외하면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다시 불끈 주먹을 든다.

뽀얀 창을 닦고,

한쪽 귀퉁이가 망가진 지불을 새로 고치고,

색바랜 담벼락을 칠한다.

골목에서는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

 

골목엔 노스탤지어가 흐르고 중에서

 


!

나뭇잎 하나 어깨 위에 떨어진다.

우주가 내려앉는다.

 

바삭한 가을 중에서

 


참 좋다.

 

수필의 자유로운 문학적 특성은 언제나 여행기에서 그 진가를 더 발휘하는 듯하다.

저자가 문득 멈춰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문득 찾아온 느낌을 기록하는 여행이야기.


지구가 자전을 멈추지 않는 한 그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어 쪼개 쓰는 우리의 시간 역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도저한 흐름을 순간순간으로 나누어,

때로는 지난 순간들을 꺼내어,

현재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남은 시간을 이렇게 살아가리라 하는 생각들.

 

저자의 감정은 때론 골목길에 멈춰 선 듯,

때론 우주를 비행하는 듯 그렇게 교차하기도 한다.

 

직접 찍은 사진들 역시 각각의 이야기를 지닌 채,

단지 말이 아닌 방식으로 펼쳐친 순간들을 설명하고 있다.



담담한 위로와 편안한 글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시간에 좋은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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