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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 이택광 묻고 지젝 답하다
슬라보예 지젝.이택광 지음 / 비전C&F / 2020년 12월
평점 :
‘미래는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 이런 유의 문구들을 참 많이 보며 살았다. 너무 뻔하고 흔한 말이라 그 뜻을 진지하게 새기지도 않았다. 2021년만큼 하루하루의 현재도 미래도 모두 ‘만들어가야’하는 시절이 실제로 닥칠지 몰랐다. 2020년과 2021년은 인류사에서 시공간적 격차가 가장 크고 뚜렷한 경계를 그었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비전이 나와야 합니다.
신기원의 순간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야만주의로 퇴보하고 말 거예요.
2021년 1월 4일자 통계로 미국은 무려 2천만 명이 넘게 확진되고 35만 명이 넘게 사망했다. 이 와중에 아직 대통령임이 분명한 트럼프는 통계 숫자가 가짜뉴스라고 떠들고 선거결과를 놓고 조지아주 주지사에게 협박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2위에 올라 선 인도는 자체개발한 백신을 임상 없이 오늘부터 자국민들에게 투여하기로 결정했다.
백신이 얼마나 역할을 할지는 모르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코로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건 확실하다. AC(After Corona)의 시대,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이라는 문구가 붙은 사회 각 분야의 논문들이 발표되고 온라인 학술대회들도 앞당겨 개최되는 분위기이고 기업 사장들은 저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인터뷰를 한다. 혼돈이 가득한 가운데 인류는 하루도 유예할 수 없는 스스로의 ‘생존 조건’을 새로 만들어가야 한다.
코로나 시절을 보건과 방역으로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이 위기는 기회로 삼을 만한 위기가 아닌 듯하다.* 인류가 상대하는 건 ‘감염병’이 아닌 듯하다. 오늘은 전국이 2.5단계에 체제로 전환되었다. 언제나 기대와 희망은 놓지 않으려 하지만, 일상도 심리도 이미 5단계쯤으로 살아온 이들도 있을 테고, 나는 절대 안 걸린다는 신념을 근거로 딴 세상을 즐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안 걸리심 제일 좋은 일이지만, 본인 포함 타인까지 감염시킨 경우 사회적 비용과 관련자 개별 보상까지 반드시 감당해주시길 바란다.
* 제 생각일 뿐이고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인 석학들은 모두 기회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국가와 협력하는 국가, 지역 사회와 협력하는 국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제가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국민이 신뢰하는 국가!
또 국민을 신뢰하는 국가가 필요합니다.
전 지구적 나눔과 협력이 바탕이 되는 새로운 국제주의 말이예요. 중략.
이제는 남들과 연대하는 것이 옳은 결정이 됐어요.
길게 보면 내 이웃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기 때문이에요.
저쪽에서 수천 명씩 죽고 있는데 내가 있는 이쪽만 안전할 수는 없어요.
한 번에 다 생각하고 줄 세우기에는 벅찬 복잡한 문제들이 줄 지어 있고, 인류 전체가 으쌰으쌰 합의와 행동에 돌입한다 해도 시간이 걸리는 일들이 부지기수일터인데, 언제나 그렇듯 기존 권력은 뉴노멀을 언급하는 그 순간에도 간절히 구질서를 회복시키고 유지하려 있는 힘을 다할 것이다. 뉴노멀은 각자도생의 새해 결심으로 이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 반드시 구조적 변화가 필수적인데, 그 동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지식도 고민도 모자라서 잘 안 보인다.
사라진 적도 없었던 불평등은 확실히 더 강해질 것이고 더 어긋날 힘의 균형은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시민이나 개별 이해당사자들이 관료기업정치조직보다 더 단결하여 더 오래 변화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공학적 계산법을 누가 발표해주면 감사하겠다.
그러니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개인적 과제와 대안은…… 일단 열심히 배워서 질문을 계속한다. 불평등을 심화하는 시도가 눈에 띄면 가능한 방식으로 대항한다. 그 와중에 뉴노멀을 지향하는 할 수 있는 소소한 개인적 실천을 묵묵히 계속한다.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 지지하고 응원한다. 가능하면 협력하고 연대한다. 그리고 끈질기게 믿고 버틴다. 정도이다.
제일 쉬운 일 단계, 책으로 배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형 인간으로 거듭 나기 위해 읽은 2021년 첫 책의 제목은 공교롭게도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이다. SBSCNBC가 기획한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 중에서 1부 철학 파트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편집한 책이다. 동영상이 함께이니 읽기 쉬운 참 좋은 교재 같다.
* 1부 철학, 2부 정치, 3부 생태, 4부 교육 분야이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MFtInytGPb98UUCjJHdsQw
가물거리긴 한데 2012년에 경희대 대강당에서 초청 강연을 끝으로 한동안 슬라보예 지젝의 사회철학을 접한 기억이 없다. 시의 적절하게 출간된 책이 반갑다. 다들 제 국가에 제 집에 갇혀 사는 형편이라 언론이 전해주는 것이 정보의 대부분이다. 각 국가별로 비판과 락다운과 인권침해와 정부정책 등이 다를 것이고 시간이 지나 그 모든 과정들이 어떤 결과로 수렴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코로나 피해가 극심한 유럽 국가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형편이 궁금했는데 얼마간 해소된 기분이다.
한국이 파란만장한 역사를 극복해온 과정이
팬데믹 상황을 버텨내는데 자양분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한국은 말 그대로 우리의 희망입니다.
국난극복이 취미인 이들이 한국인들이라는 얘기를 2020년 초여름쯤에 들었다. 뭐, 파란만장하게 살아 봤으니 또 할 수 있지, 하는 건 좀 약이 오른다. 그것보다는 우린 많이 했으니 이번엔 누구 다른 이들이 해봐라, 가 훨씬 정의롭게 들린다. 진심이다.
이 모든 게 다 꿈이고 가상체험이고 잘 만든 신나는 영화처럼 구세주나 영웅이 딱! 나타나주면 좋겠지만, 그건 남들은 많이 봤다기에 열심히 원해도 나는 한 번도 못 본 귀신처럼 부질없는 바람이다.
끈질기게 견디고 버티고 그래봅시다.
속 시원한 다른 좋은 방법 아시는 분들은 얼른 널리 공유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