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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얼지 않게끔 ㅣ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평점 :
거리두기단계가 격상된다는 소식에 잠시 숨이 턱 막힌다.
눈도 오지 않는 2020년 겨울은 또 어떤 모습으로 버텨내야할까.
모두의 생활 방식과 질병이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게 가시적으로 촘촘히 상호 연결된 시절,
연대에 실패한 불안한 개인들은 혐오로 뭉친다는 글을 읽었다.
꼭 이런 때가 아니더라도 이해하고 이해받고 의지하고 의지가 되는 한 사람은 소중하다.
소설이 쓰인 2019년의 겨울은 이상고온현상이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그 어떤 때보다 춥고 매서웠다.
겨울을 앞두고 그해의 10월과 11월에 연달아 세상을 떠나야 했던
두 여성에 관한 소식 때문이었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들의 틈새에서 우울과 슬픔을 겪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1208/pimg_7391901682756949.jpg)
지극히 평범한 생활공간에 더없이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흘러 가다가,
가끔씩 추리 스릴러처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분위기와 표현들이 등장한다.
인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여름,
모든 것은 희진에게 달렸다.
그리고 햇빛 알레르기.
어린 시절 면역력이 모자랐는지 여름이 시작하는 어느 날엔 늘 피부과를 방문하며 컸다.
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기도 하고, 물속에서 나오기 싫게 피부가 뜨겁기도 했다.
더위를 모르는 이와 햇빛 알레르기가 심한 이, 이렇게 두 명. 흥미로운 캐릭터들이다.
특히 송희진씨,
아무리 이상해도 그렇게 주저 없이 타인의 신체를 계속 꿋꿋하게 열심히 관찰하다니요.
기억 못 하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인경씨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거면 지금 이 상황을 함께 감내할 만한 이유로도 충분하고,
어쨌든 나름의 책임감도 생기고요.
중략.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말을 보태지 않으셨잖아요, 그런 소문들에.
의미 없는 동조와 편가르기에 말 하나 더 얹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좌절이 되는지
모를 것라고 덧붙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1208/pimg_7391901682756950.jpg)
사람들 참 편하게 생각하잖아요.
여름에 더위 많이 타면 으레 살쪄서 그렇다, 건강하지 못해서 그렇다,
정말로 여름을 버티기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 속 편한 말을 잘도 한다니까요.
그거 다 노력이 부족한 거라고. 운동하라고.
그러면서 겨울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잖아요.
추운 게 버티기 힘들다, 싫다 그러면 체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밖에 나가서 좀 뛰어보기라고 하라고,
노력 부족이라는 이야기를 어쩌면 그렇게 사계절 내내 돌려 막기처럼 사용하고 그러는지.
참 이상하죠, 저는 더운게 싫을 뿐인데, 싫은 건 이유 없이 그냥 싫은 건데
사람들은 뭔가 늘 이유가 있고 숨겨진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캐내는 걸 유난히도 좋아하고요.
뭐랄까,
작가는 이토록 예민하고 영리하게
평범한 모두의 잔인하고 비열하고 집요한 공격성을 모두 다 보고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엔 잔뜩 들어간 힘이 스르륵 풀리도록 만드는 선의와 온정과 희망을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체인 양 들려준다. 강한 사람이다.
뜻도 모르면서 문득 작가의 이름 - 강.민.영. - 이 주는 느낌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즈음 회사에선
내가 백혈병이나 조류인플루엔자니 하여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중략. ‘그때부터 뭔가 좀 이상했다’는 심증의 빌미가 되었고
결국 그 소문은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소설의 직장인들의 모습이 과거의 풍경인지 완전히 달라진 미래의 일상인지
더 이상 모르겠다. 서글프게도 현재의 매일은 더 이상 아니다.
누군가의 생사를 확진하는 소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듣는 시간 속에
두 사람이 시종 조용하고 소소하게 들려주는 우정과 연대의 이야기가 편안하다.
더 잘 팔리는 것은 언제가 사랑이라, 우정은 지나치게 폄하되기도 하지만,
인간이 성장하고 살아가는 긴 시간에 우정은 자주 아쉽고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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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누구나 이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거라면,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버텨내고 있는 걸까.
지구가 한 번 공전하고 제자리고 돌아왔을 때에도 무사히 살아남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은 채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두 여성의 이야기,
그 과정을 전하고 싶었다.
봄이 오면 떡볶이부터 먹을 거예요. 맥주 한 캔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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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일 모든 말이 점점 더 사족처럼 느껴지는 담백한 글이라,
발췌하고 필사하는 문장들만 이어졌다.
서평이라 할 수 없는 글이 되었다.
마음 들볶을 일 없이 확실한 선의에 안심하며 읽어서인가 싶다.
간절히 원하지만 구할 수 없어서 기대하지 않았던 것,
노력과 눈물이 모두 보상 받는 관계,
그런 따뜻함이 기적처럼 사고 없이 미래를 보장해줄 것 같은,
내 이야기였으면 하고 바랄 그런 이야기였다.
누군가를 돕는 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일도, 낯설고 어색한 일이 아니면 좋겠다.
어쩌면 거기에 연대와 희망이 있을 거란 소원 쪽지를 걸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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