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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이야기를 품다
장미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9월
평점 :
품절
해마다 비슷한 패턴이 있었는지 올 해만 그런 건지 잘 기억이 안 나고, 굳이 기록을 확인해볼 마음까진 안 들지만, 올 가을 책을 읽다가 문득 수필을 자주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들거나 불만스러운 건 아니고, 작품보다 작가에게 더 바짝 다가가는 듯한 독서가 수필을 읽는 것이라 순간 정신이 명료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다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존재하는 문학의 형태 중에 수필은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서, 나는 그 점이 기쁘기도 하고 때론 막중하기도 하다. 머리가 멍하고 감수성이 둔한 날이면 오히려 적절하게 즐길 수 있는 내용도, 그렇지 않은 날에는 공감을 넘어서는 버거운 느낌 때문에 허우적거리게도 된다.
그런 저런 이유로, 그리고 특히 거리두기단계가 상향 조정되는 오늘처럼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드는 날이면, 담담하고 다정한 이야기는 다가가기 쉬우나 예민하고 통렬한 삶은 잠시 힘을 보완하고 만나고 싶기도 하다. 부연하자면, 어쨌든 나는 수필을 읽으며 작가와 사적인 대화를 나눈 것도 같고 사정을 알아차린 지인이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혹 작가들 중에서도 하나의 주제나 소재나 에피소드나 구체적인 한 시기가 아니라 삶 전반에 도저히 흐르는 대서사, 처절하고 내밀한 깨달음, 회환과 그리움을 수필에 담는 분들이 있다. 한 인간이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문체와 정서로 쓰인 문학인 수필 앞에서 나는 늘 이렇듯 읽기 전에 겁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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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숙 작가는 내 망설임에 대한 주절주절 변명보다 더 명료하게 수필은 ‘나’라는 인격적 주체가 뚜렷이 드러나는 장르라고 한다. 생 이야기. 날 것. 사실이 진실이 가장 힘이 센 경우는 여전히 많다. 마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 포장지 없는 글이 아닐까 떨리는 마음으로 읽는다.
도입부터 얄짤없이...... 제목 - 의자, 이야기를 품다 - 을 보고 먼저 기대한 내 상상이 얼마나 현실 도피적이고 달달한 판타지였는지, 자꾸만 일단 그런 걸로 시간을 견뎌보려는 나 자신을 또 다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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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런 류의 이야기 읽으며 안정제 처방약 먹은 것처럼 시간 보내고 싶었습니다.
무뚝뚝하지도 날이 서지도 혼을 내지도 않으면서도 돌려 말하기 없는 그대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글들이다. 작가는 순간이 아니라 시간을 오래 들려 찬찬히 변방과 가장자리의 사물들과 인간의 삶을 연결하고 통찰하여, 마음에 오래 품었다 대화로 글로 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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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의자는 마련되지 않은, 치워버린 세상, 그 장면들을 떠올리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연말이면 나는 몇몇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올 해도 잘 견뎠다고, 계속 잘 견디자고. 그런 재미없고 갑갑한 내용이 거의 전부이긴 하지만, 견디다 손을 탁 놓아버리는, 이제 그만 놓고 싶은 이들이 항상 있고, 그런 소식을 드물지 않게 듣기도 하니……. 별 도움은 못되는 주제에 견디자는 주문만 별수 없이 자꾸 외운다.
작가는 ‘버틴다’고 말한다.
어쩐지 ‘버틴다’의 어감이 물리적인 실체감이 더 느껴진다.
발이, 다리가, 몸이, 주먹이, 이가, 눈이 나와 함께 버틴다.
발작적으로!
이제는 단어 자체가 괴롭기도 한 견딘다, 는 내 전언을 당장 버틴다, 로 바꾸고 싶다.
꼭 바꾸고 싶다.
* 44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