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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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존재하지 않은 동물을 태연하게 동물 분류에 올리고 12지에 기록하고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심지어 자식들 이름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 나는 꽤 어려서부터 아무도 본 적 없는 이 동물이 인간들의 일상과 문학과 문화에 너무 자연스럽게 섞여 살아가는 점이 신기했다그리고 그런 사실에 구태여 반감이나 의구심을 가지지 않는 어른들의 반응을 살피며혹시 나만 빼고 모두 다 본 것 아닌가,하는 쓸쓸한 기분을 종종 맛보기도 했다지금이야 그런 인간의 능력이 사랑스럽고 피해를 주거나 범죄에 이용하는 것만 아니라면 이 상상의 동물이건 어딘가 상상의 세계가 평행우주처럼 펼쳐져 존재하건 다 반갑고 행복한 일이라 진심으로 생각한다.

 

바닷물 속에선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고 편안하기만 해서 어릴 적부터 한번 들어가면 해가 져서 부모님이 기어코 야단을 칠 때까지 나오기가 싫었다육지보다 더 넓고 넓은 바다아직도 만나본 적 없는 바다 생물들그러니 상상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가 무한보장이었다상상하는 능력이 월등할 어릴 적엔 향유고래를 따라 심해 여행을 하며 바다 생물들을 만나는 꿈을 자주 꾸었다아무런 육체적 정서적 제약도 없이 자유롭기만 한 행복한 꿈들이었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새 원하는 마음이 줄어들어서인지원하는 것들이 달라져서인지문득 그리워서 아무리 바라봐도 더 이상은 돌아오지 않는 꿈이 되어 사라졌다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봐 준다면자유로운 존재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 꿈을 돌려달라고 부탁해보고 싶다.

 



이 책의 제목은 그 꿈들 중에 언젠가 큰 조개 주변에서 만난 인어를 떠올리게 한다많은 분들도 그러하겠지만 인어라는 말에는 언제나 어린 시절 각인된 안데르센 동화가 분리불가능하게 녹아있다신비로운 존재가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결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어린 마음에도 스산한 허무감 물론그 시절엔 관련 단어조차 몰랐지만 -이 들 정도였다충격과 상처(?)라는 독특한 감상으로 남은 독서 경험이 디즈니의 유려한 애니메이션과 음악들로 흥겨운 축제의 기억으로 변모하기도 했다전혀 다른 작품이기도 하면서 연결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그리고 해리포터 작품 속의 서글플 만큼 무시무시한 인어…….

 

백어의 비늘은 백어가 처음 한 번만 주는 거야.

그것만 행운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운을 가져오지.

백어의 비늘을 훔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화가 난 백어가 자기 비늘로 소금 도둑의 목을 뎅강 잘라.” 63

 

이 소설은 인어라는 명칭 대신 백어가 나온다그런데 어쩐지 내게는 다 읽기도 전에 인어가 주인공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돼지와 돼지고지소와 소고기의 관계처럼인어/백어의 존재가 온전히 인간에게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딱 인간에게 필요한 용도의 그 부위만 탐나는그래서 제목이 소금비늘일 것 같은


거래와 매매와 가격과 욕망과 탐욕그 모든 것들의 그늘짐과 필연적인 불행들슬프다슬프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며 읽게 된다필력 높은 작가의 몰입도 강한 전개 덕에 약속은 언제나 제일 먼저 버려지는 육지 인간들의 세상이 가감 없이 신랄하게 드러난다잠시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동안 시원하게 느껴질 법한 가을 밤공기가 스산하고 무겁게 얼굴에 닿는 듯했다.

 

한때 그들의 현실이었으나 이제 꿈이 되어버린 곳.

꿈꾸던 환상이 현실이 되면 두고 온 현실은 다시 꿈이 된다. 208

 

안 그래도 벌써…… 재미나기만 했던 많은 것들이 모두다 조금은 서글픈 나이가 되었다신비롭고 흥미로운 장편소설일 것이라 반가웠던 이 환상 소설을 읽고 나니 새삼스럽게 현존하는 모든 것들이 언제라도 판타지로 분류될 수도 있는 현실을 늘 경험 중이라는 현실감이 든다모여서 먹고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시절그래도 사람들은 명절마다 더 이상 자신들이 바라는 원형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 고향으로 가고 또 간다마치 잃어버린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 가는 것처럼집단적 환상을 보는 것처럼슬프다슬프다.

 

경복궁의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배치하고인의예지를 4대문에 맡겨서 인간다운 가치 위에 권력과 제도를 건설하려는 꿈을 꾸던 사람들이 살았던 이곳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랐다그렇다고 그 모든 꿈들도 어느덧 환영처럼 사라진 이 물리적 공간이 내 고향이라고 절절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그래서 내게는 어디든 타향이고 그 점이 막 불행하지도 않다그보다는 원하지 않는 사실은 믿지 않고 원하는 환영만을 택하는 정치권력을 지켜보는 일이 더 괴롭고 해롭다.

 

소금비늘을 훔치러 백어를 쫓아간 인간들이 어지럽힌 바다에서 그 몰염치와 탐욕에 분노한 파도가 점점 더 높이 솟아오르는 환영을 본다.

 

나는 명수(暝水)에서 왔느니라.

그곳에서 어떤 이는 등불이 되고 어떤 이는 그림자가 되었지.

그리하여 나는 처음과 끝을 모두 보았노라.

또한 한 세상을 모두 보았노라.”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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