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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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개로 평가하려니 마음이 아파 이렇게 별무리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집중력의 정도와 반드시 비례하지도 않고 들인 시간에 결과적으로 비례하지도 않는 것이 생각의 영역이라는 점은 나처럼 기껏 평범 언저리를 도는 사유능력을 가진 이들이 맞닥뜨리는 한계를 규정한다고민하고 탐구한 사유 과정을 통해 좋은 생각이 나오고 그 생각에서 좋은 글이 나오는 지라…… 일찌감치 한계에 봉착한 나는 경계를 자력으로 넓히지는 못하고노력의 양도 사유의 깊이도 기술의 능력도 에베레스트 높이만큼 다른 재능 넘치는 저자들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증강현실과 같은 경험치를 쌓아가며 산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들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대상들알아도 생각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방법들에 대해 충실하고도 재미난 방식으로 알려 주는 책들종종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정교한 절도 기술이 아닌가 한다어떤 책들은 하나의 주제어에 대해 인류가 이제껏 해왔던 생각들을 모조리 정리해서 알려 준다정말 19,000원을 내고 이 모든 정보를 소유하는 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싶다.

 

재능 있는 노예(talented slave, 재능이 뛰어난 이는 그 재능으로 인해 노예와 같은 강도로 재능을 활용하는 업무 지옥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사회는 그로 인한 이득을 위해 그런 노동을 연구 열정 또는 다른 긍정적 이름으로 부추긴다)란 표현이 떠오르면서 재능부족인 존재로서의 안도감과 재능 있는 저자들을 계속 착취하고 생각을 훔치는 일에 영원히 가담하고 싶다는 못된 생각이 슬며시 든다.

 

<뉴턴의 아틀리에>는 (내게는)그런 훔치고 싶은 대표적인 책들 중 하나이다그런데 책이란 지적산물은 구입한다고 읽어 본다고 제대로 몽땅 훔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문제이다문득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  )% 정도 이해했습니다.’라고 통계 자료를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틈만 나면 미술관을 찾는 과학자와 물리학회까지 참석하며 과학에 열정을 보이는 디자이너가 만났다이들이 고민하는 내용들은 관찰과 사색수학적 사고와 창작의 세계,라고 소개되는데재밌는 점이 목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키워드를 놓고 생각을 주고받는다 ― 소통한다 ― 는 점이다 이야기소통유머편지자연스러움죽음감각보다가치두 문명언어이름평균스케일검정소리재료도구인공지능상전이복잡함이렇게 26.



그러면 이들은 왜 소통하려 할까’ 흥미롭게도 유지원 디자이너는 물리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전반에 대한 상당한 기초지식을 가진 것이 분명한 듯 소통하는 힘이 생명력이라는 주장을 생물학세포학의 관점을 들어 논거 한다김상욱 교수가 발언한 부분이 아니야하고 다시 확인하며 읽었다내 경험이야 일천하긴 하지만 이런 재밌고 유쾌한 디자이너는 처음이다.

 

하지만 세포들도 인간들도네트워크를 이루어 서로 의존해야 생존을 유지한다.

아무리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늘 외부와 어떤 경로로든 소통을 하고 있다.

이것이 개체성과 양립하는 사회성이다.

세포막으로 경계가 나뉜 세포들은 서로 어떻게 소통을 할까?

세포막에는 여러 종류의 막단백질이 있어,

이들이 세포의 외부와 내부를 소통시키기도 하고세포들끼리 소통시키는 역할도 한다.

세포막은 개체의 경계를 가르면서도서로 소통하고 연결하며 생명을 유지하도록 한다중략.

소통이란 생명 그 자체이고때로 개체의 목숨을 초월해서 관철되기도 한다.

뉴턴의 아틀리에』 역시 막단백질 같은 역할로 여겨졌으면 한다.

여러 분야들의 세포막 같은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의 통로처럼 여겨지기를 바라면서,

경계 밖 외부 신호를 감지해서 받아들이고 이를 다시 관계 맺고자 하는 의지로 내보내면서,

오늘도 이 글을 쓴다.

 

그리고 표지부터 등장해서 더 없이 반갑고 기쁜경애하는 김초엽 작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의 문장들이 이 아틀리에를 더욱 안온하고도 들뜨게 한다.

 

과학은 거대한 우주 속 미약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하고,

예술은 그 미약한 우리의 작은 마음을 우주로 확장한다.

우리는 한낱 우주먼지이지만 동시에 온 우주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 사람을사물을현상을 단 하나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것에 숨겨진 무한한 세계를 발견할 수 없다.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는 동안 나는 마치 작고 많은 세계들을 발굴하는 예술가의 공방에 초청받은 것 같았다.

이 책은 하나의 현상을 단일하게 파악하는 대신 여러 관점을 통해 겹겹이 쌓인 결을 찾아보자고 말을 건네 온다.

과학과 예술은 서로를 경유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

과학자는 우주에서 시를 발견하고 디자이너는 글자의 아름다움에 관한 법칙을 쓴다.

다른 영역에서 출발한 선이 무수히 교차하는 지점들이 펼쳐진다.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고 동시에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존재이므로,

결코 감각할 수 없는 입자를 증명하는 일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풍경을 캔버스 위에 물성화하는 일은 결국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

그와 같은 교차와 확장의 순간들을당신도 분명히 뉴턴의 아틀리에에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하지만 생명은 영원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해서 자가 복제가 가능한 존재는 처음 모습 그대로 영생을 누리고인간처럼 유성생식을 선택한 생명은 생식세포 단 하나만을 남긴 채 다른 모든 세포가 사멸하지만어쨌든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에 죽음이란 사건은 존재한 적이 없다최초의 생명체가 가졌던 생명 정보는 지금도 우리 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거듭해서 환원하다보면 우리는 하나의 생명체에서 거듭해서 분해결합진화분화를 통해 갈라진 존재들이다무시무시하지만 이쯤 되면 나와 남의 경계도 없어진다예를 들어 30,000년 전에 사라진 생명체들의 구성 원소들이 뒤섞여서 오늘날의 나와 내 친구혹은 가장 혐오하는 존재로 재결합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우리가 가지는 상대에 대한 감정은 모두 자기애일 수도 자기혐오일 수도 있겠다어쨌든 너무 환원적 사고에 몰입하면 분별력이 사라지니사실은 알아두되 상상의 경계는 적당히 건전하게 두는 것도 (내게는필요할 듯.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이 된 것은 아닐까?

 

이름이 존재를 보장하지 못한다

더구나 이름은 자의적이다

하지만 이름은 존재에 의미를 준다

동양에서 형상은 문자가 되고 문자는 의미가 된다

하나하나의 이름 없는 의미들이 모인 군상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춤이 될 때

그 춤은 또다시 하나의 형상이 되고 문자가 되고 의미가 된다

이렇게 우리는 이름을 쟁취한다.

 

흔히 우리는 암기식 교육의 단점들을 소리 높여 지적하고 창의적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나는 그런 주장들이 전하는 분위기에 불만이 있었다암기 위주의 교육이 잘못이라고?! 교육이 암기 위주가 된 것은 이해해야할 내용을 암기시키고 암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 여타의 모든 사회적 행정적 편의주의 때문이다암기()없이 할 수 있는 교육 같은 건 없다.

 

예를 들어 가장 기초적인 교육에 필요한 문자를 읽히는 방법은 반복 암기 밖에 없다나처럼 암기 능력이 떨어져 힘들어 하던 한 단원에 공식 하나만 이해하면 되는 수학이나 물리학과 달리 외워할 정보들이 빼곡한 과목들은 얼마나 오랜 노고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이조차 어떤 단계의 학문이든 암기력이 뒷받침될수록 사고가 더 자유로워진다는 점을 완전히 인정한다사전이나 원저를 찾아보면 된다고안타깝고 슬프게도 그 속도로는 생각 속에서 여러 정보들을 이리저리 굴려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고 발견해내는 가치 있는 연구는 불가능하다.

 

아무튼 혁신도 늘 전통 위에서독창설도 질서 위에서 가능하니창의력은 그렇게 이뤄진 혁신과 그렇게 변주된 독창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낯선 언어들과 다른 분야들이 소통하고 연결될 때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유럽에서 초현실주의의 비현실적 꿈이 그려지던 시기물리에서는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양자역학은 원자의 세계가 상식과 직관을 넘어 비현실적 꿈같다고 말해 준다.

양자역학과 초현실주의가 1920년대 중반 유럽이라는 동일한 시공간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현대미술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김상욱

 

중력 원칙에 따라 작품을 완성하는 예술가와 그것을 자연스럽다(natural, 당연當然하다) :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고 해석하는 과학자양자역학의 관측’ 개념으로 설명되는 르네 마그리트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열역학 제1법칙에서 보이는 생명력의 예술적 패턴을 읽는 타이포그래퍼사실 이미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었지만 인간이 이제야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지만그래도 여전히 신기하고 재미난 것만은 사실이다존재하는 현실을 시대와 시대정신에 맞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대한민국에서 공사 영역의 구분 없이 조 단위의 자본이 투입되어 그토록 원하는 창의력이다.

 

낯선 언어는 서로 다른 것들 간의 뜻밖의 연결을 만들어 낸다

이 연결을 자유자재로 적절히 구사하는 능력이 곧 창의력이다.

 

과학과 예술은 통시적으로 보아 새로운 사실과 변화에 가장 민감할뿐더러 포용하고 활용하는 저항도 적은 분야이다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과학과 예술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그림 하나 글 한쪽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좋고그냥 책 한권을 다 필사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듯하다끝없이 길어지고 집중력만 떨어뜨리는 본인의 사설을 거두고 원저의 내용만 모으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르네상스가 끝나 갈 무렵보는 것의 혁명이 과학을 강타한다

1609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20배율 망원경을 제작했다.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은 19세기 인상주의에 이르러 완성의 경지에 도달한다

이렇게 혁명은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것에서 시작되었다.

 

보이는 것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변화하고 완성되기도 한 과학과 예술이 둘을 배우고 활용한 인류에게 뜻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었다의도든 우연이든 재밌고 신기하다이 능력으로 인류는 이제껏 현상을 분석하고 감춰진 진실을 밝히고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견뎌왔다인류를 절망과 멸절로 향하지 않도록 한 힘의 하나로 작용해왔다고 나는 믿는다.

 

현대물리학은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어 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면 길이가 짧아지고 시간이 느리게 간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다.

물론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속도에 도달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극미(極微)의 세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에서는,

하나의 물체가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있고 보는 행위가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

이런 세상에서는 우리의 경험이나 언어가 무용지물이 된다.

이제 우리는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김상욱

 

마음의 과학은 이제야 양적 근거의 데이터를 조심스럽게 확보하며 인간의 마음을 과학의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과학이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곳에서생생히 살아서 꿈틀대는 우리의 마음은 방치되어야 할까답이 보이지 않는 그곳으로시인과 음악가들은 결연히 걸어갔다섣불리 희망을 노래하거나 처방을 내리지 않은 채그들은 인간의 마음이 겪는 고통의 심연을 따라갔다.

 

유머 감각이란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여유를 갖고 주위를 넓게 둘러보며 균형을 잡는 힘

 

우리가 배우고 생각하는 이유는 직각의 정적인 안정감과 구의 동적인 율동감 사이에서 균형의 기쁨을 찾기 위해서.

 

무한의 반복을 멈추고 유한에 머무는 순간 그 유한의 크기는 부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점은 물체가 아니라 과정이다

점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인식의 구속과 오류로부터 자유를 탐색하고,

왜곡되었을지 모를 구태의연한 시선에 대해 보다 나은 방식을 제안하려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들은 개인의 자립감과 자존감을 높이고,

결국 공동체를 각성하게 하며 치유하는 사회적인 효과를 가진다.

인간이 세상과 더 잘 지내고자 하는 도정인 것이다유지원

 

정규분포에서 평균은 집단을 대표한다

평균이 집단을 대표하지 못하고 부의 분포가 지나게 치우치면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그 해답은 평균즉 집단지성을 이용해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완벽한 검정에서는 무엇을 보게 될까?

밴타블랙을 바라보면 안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난다.

그것은 우주일 수도 있고 블랙홀일 수도 있고 지금 내가 빠져 허우적거리는 진창 같은 인생일 수도 있다중략.

사실 진창은 빠져나올 수 있다.

검정은 끊임없이 흑체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김상욱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은 왜 수학과 예술이 존재하는지 설명해 준다

우주는 인간의 언어와 이해 방식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학의 방식으로 기술된다

간은 수학과 언어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을 예술로 표현한다

그래서 예술은 언어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분석할 수도 없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보지 않고도 하는 것이다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세밀화가는 보지 않아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아니보기 전에 대상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는 것이 대상을 만들어 낸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보는 것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세상이 존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방이 180개쯤 있는 고아한 성에 초대되어 8개쯤 방문을 열고 잠시 둘러 본 기분이다발자국 자리들만 어지럽고 길어지기만 하는 글이라 그만 마치려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4.44444...% 정도를 이해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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