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쉬운 패권 쟁탈의 세계사 -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한 힘의 연대기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박연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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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전쟁과 패권의 주요 무대는 땅 따먹기’ 게임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아시아권에 속해서 아시아권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산 탓일 것이다가만 생각해보면 삼면이 바다인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바다와 해양 세력에 대한 면면이 익숙할 만도 한데과문한 탓인지독서 편식 탓인지 어쨌든 내게 해양 패권에 관한 역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다 섬나라 영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슬쩍 슬쩍 들춰본 영국의 역사에는 온통 바다 건너 온 세력들과의 전쟁바다 건너 간 영국인들의 식민지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주 무대를 이루었다자연히 세계사에 대한 내 생각의 지평도 해양으로 슬쩍 옮겨 갔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유럽인들의 편견에 따른 시각에서 만든 명칭과 그 침략 경로를 따라 가다 보면원래 가난한 육지 환경에서 태어나 본토에 별 미련이 없어서인지 항해 거리와 상관없이 먼 지역에 이르기를 서슴지 않는다영국과 유럽의 조상들이 알고 보니 북유럽의 바이킹인 된 것도 가혹한 자연 환경을 떠나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떠난 것이 계기였다.

 

자연히 유럽 역사에는 해양 관련 기술에 따라 지배 구조가 결정되었는데 이는 후발 주자인 미국에 해군(marine)이 주력 부대인 것과도 일맥상통하며또한 비효율적인 덩치만 큰 대한민국의 육군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거대화되어 최근까지 유지된 것인가 세계사의 측면에서는 실감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5,000년 동안의 세계사 - 위 표지 아래 부분의 스케일 - 이며이를 세 공간으로 나뉘어 그 흐름을 쉽고 깔끔하게 보여준다위에서 언급한 대로 유라시아에서 오래 지속된 육지의 역사다섯 대륙이 대양을 연결된 바다의 역사항공망과 인터넷 가상공간으로 이루어진 하늘의 역사 순서이다당연히 각 시대별로 육지바다하늘을 지배한 나라가 패권을 장악하였다.



저자가 재밌고 흥미롭게 연결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조금 요약해보면;

 

희망봉을 발견한 포르투갈은 당의 7-8% 정도만 농업에 쓸 수 있었다살기 위해 바다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네덜란드는 청어를 절일 소금이 필요해서 서인도회사를 세우고 해운업을 시작하였다영국은 한랭한 기후와 장작의 부족으로 증기기관을 발명하게 되었으니 산업혁명의 계기는 영국의 추위이다 실감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나 영국에 여러 해 머물러본 경험상 납득이 갑니다자연환경이 참 가난합니다구릉과 들판에 나무가 몇 그루 없고 풀만 가득양 떼와 소 떼가 멀리서보면 목가적인 풍경일 뿐이지만 뭐 먹고 사나 싶은 토양이기도 합니다그리고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비가 오나 안 오나 건물 안에서 난방을 해도 춥습니다그늘에만 들어가도 춥습니다한 여름에도 늘 점퍼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먼저 서유럽과 중유럽에서 여러 민족의 의식이 변하고마지막에는 전 세계의 모든 인간의 의식 전체가 근본부터 달려졌다이러한 의식의 변혁이 진정한 의미의 공간 혁명이다.

 

통시적일 뿐 아니라 세밀한 이 역사서는 세 가지 유형의 서사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각 공간에서 탄생진화명멸한 왕조와 제국의 역사를 재밌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일단 문명의 탄생부터 14세기까지는 육지를 차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와 교류가 암기식 교육의 효과로 페르시아로마몽골 제국이 만든 국경선의 변화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 대서양시대라 불리는 15-18세기까지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식민지해상무역이민산업혁명 희망봉 발견콜럼버스와 마젤란 대항해의 시대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의 과학혁명에 따른 물리적 세계관의 변화 - , 그리고 19세기부터 현재까지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항공통신글로벌 경제, IT 기업들에 대해 다루며 앞으로의 행방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저자가 아주 쉽게 설명해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사가 무척 간명한 큰 그림으로 그려진다반갑기도 하지만 거시적인 시각에서 부각되는 거대 권력과 제국들을 제외한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불가시의 영역으로 밀려난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내가 제국의 후손이거나 현재 패권국의 국민이라면 좀 다르게 혹은 자랑스럽게 느껴지려나.

 

한시도 평화의 휴식이 없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져온 인류의 역사에서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든 현재 입장이 패권국이라면 다른 책임과 역할도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잠시 생각해본다그런 의미에서 명실상부 G2국가로 분류된 중국과 미국의 입장과 태도는 자세히 내막을 몰라도 자주 걱정스러울 정도이다오랜 세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변방나머지 국가(the rest of the world) - 미국 학교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미국인 교사에게 들었다 -로 분류하고명백한 자국중심주의자국제일주의가 제1가치로 삼고 있으며 그런 태도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지구상의 패권 다툼은 5G에 있다고 한다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사회의 기반이 되는 것이 5G 전환이기 때문이다이제는 현실 공간보다 훨씬 넓어진 가상공간에 대한 패권의 시대이다앞으로는 화웨이에 대해 미국이 시비를 걸고 공격하는 기사를 읽을 때마다 패권 다툼의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싶다물론 먼저 시작되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우주패권 시대도 있다오늘 기사에 드디어 민간우주항공의 시대가 열렸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가능성과는 관계없이 우주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패권 다툼은 주도국들의 자원이 바닥나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패권국이 되고 세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부정할 수 없는 것은 결핍이 확장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는 것이다굶는 일이 다반사였던 가난한 유럽은 그래서 거듭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패권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결핍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고 나처럼 게으른 이들은 평화롭고 안온한 삶이 제일이라 생각하지만적극적으로 역사에 뛰어들어 방향을 바꾸거나 정하고 싶은 이들은 어떤 역사의식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 혹은 있어야할까그에 따라 세계사의 동력과 방향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역사서가 재미있어서 읽는다물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성찰을 위해 진지하게 읽는 다른 이들도 계실 것이다다양한 소재들 중 하나를 선택에서 아주 미세하고 흥미롭게 역사를 바라보는 책들도 있고이 책처럼 고공관찰을 하듯 한 눈에 세계사의 흐름을 그리는 책도 있다나로서는 아무리 지루하단 평이 있는 역사서도 몰입해서 잘 읽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지라 모두 반갑다그래도 어떤 책들은 상당한 도전을 요구하는데 이 책은 읽을수록 참 친절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했다아마도 20년 동안 고등학교 세계사 교사로 일하며 교과서를 집필한 저자의 경험과 고민이 낳은 장점이 가득한 책이라 그런 듯싶다.

 

공교롭게도 인류 문명의 세계사는 현재 재편 중이고 혹자들은 이를 Before Corona, After Corona라고 명명하기도 한다이 때를 핑계 혹은 계기로 삼아 세계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배경 지식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역사적 행방을 고민해보고 싶은 분들은 읽어 보시면 좋겠다무척 재미있고 쉽고 친절하다는 장점을 재차 부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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