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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듣는다
박경전 지음, 박은명 그림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평점 :
‘무욕을 욕망하는 어리석은 멍청이입니다.
제 말에 속지 마세요.’
한 때 나의 이메일이나 SNS의 자기소개였다.
‘원불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채로 원불교 교무인 저자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교리에 기반을 둔 주제를 내용으로 한 시들이 많으면 이해를 제대로 못하겠구나 싶어, 급히 인터넷으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뜻밖에 한국에서 태어난 종교라는 점, 불법을 주체로 하고 있으나 개혁종교라는 점, 그 개혁 방향이 대중적이고 생활적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독점적인 신앙교리를 주장하는 분위기는 없고 무척 원만한 건전 시민 교육의 내용들로 보일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깨달음을 들려준다.
기원과 원전에 대한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해당 시대와 생활과 대중에 적합한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태도는 놀라웠다. 진리라는 말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 과학자들의 세계에 익숙한 나는 종교적 진리에 대한 경외와 믿음이 없어서 특정 종교에 적을 둔 적이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원불교를 생활불교라 칭하던 때가 있었다.
생활종교라는 말이 더 좋겠다.
생활 속에 활용되는 종교.
얼마나 아름다운 종교의 이름인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종교 소식의 거개는, 신도들의 소중한 생활을
볼모 삼아 탐욕의 주린 배를 채우고,
온갖 거짓과 패악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이비 종교는 신도들의 모든 것을 종교에 바치라고 한다.
진정한 종교는 종교의 모든 것을 활용하여
신도들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라고 한다.
생활은 삶 그 자체다.
진정한 종교와 사이비 종교의 차이는
삶(생활)이 종교에 이용되는지,
종교가 삶(생활)에 활용되는지의 차이다.
- 19. 사이비와 생활종교 중에서
활동 내용을 보니 타종교들과도 상호 소통하기를 명백하게 표방하고 그러한 분위기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사상을 채택하고 활용하거나 새로운 역사관을 수용하거나 아주 구체적인 사회운동으로 현실화시키는 일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저축조합운동으로부터 교단을 창립하는 것으로 나아갔다고 하니 사회실천운동의 성격이 먼저인데, 그 점 또한 새롭고 흥미롭다.
극도로 가난하고 억압이 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교육운동에 힘을 쏟은 면모도 보이고, 조선시대 남존여비사상과 일제 식민지의 여성비하적 분위기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가해진 교육의 제한을 반대하고 ‘남녀권리동일’을 전하며 여성교육에 힘쓰고 양성평등사상을 힘차게 추진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교화활동이나 조직체계에서도 성비를 동등하게 제정해서 선출해오면서 오늘날에도 여성전문출신이 60-70%에 이른다고 하니 기성 종교와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통계가 사실이라면 운영방식 또한 민주적이고 종교 지도자들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과다한 귄위의식에 따른 문제들도 상당히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잠깐 찾아본 것만으로 제대로 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원불교와 수행자들이 허례허식보다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들에 더 관심을 두고 수행하지 않을까하는 나름의 짐작을 해본다.
이렇게 시집을 읽기 위한 준비로는 조금 색다른 예습(?)을 마치고 단정하고 간결해 보이는 책장들을 넘겨보았다. 천천히 시를 읽는 즐거움과 애를 덜 쓰면서도 교리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가능할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