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 438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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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참새』,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 제목들을 보고 다른 독자들은 얼마나 생각나는지 궁금하다. 나는 기억나지 않은 것보다 기억나는 것들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곁에 있어준 느낌을 늘 가진 시인이 1973년 등단하셔서 올 해 또 다시 시집을 출간하셨다는 연혁을 처음 기억할만큼 알게 되었다.

 


머리가 뜨거울 때도 마음이 차가울 때도 몸이 아플 때도 자주 위로가 되어준 시들이 많다. 언제나 탁한 실내 공기 속에서 지쳐가다 갑자기 생각난 듯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면, 그제서야 하아~ 하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기분이 든 작품들이었다. 어쩌면 그 격렬하고도 엄중한 시기들을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늘 고운 언어들을 지켜오셨는지, 참 세상이 어떤 환경이더라도 이렇듯 살아가시는 분들은 늘 있구나 싶다.

 

내가 살아 온 세상이 꼭 늘 그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겐 분명 세상은 간혹 더없이 잔인하고 냉혹하고 그래서 사는 일이 비루하고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는 일이, 뭐 하나 도움이 되겠나, 계속하자, 라고 늘 지치지 않고 얘기를 들려 주는 시인이 정호승 시인이다. 좀 더 젊은 날에는 건조해지고 사나워진 마음 사이에 콕, 콱, 박히는 느낌으로 만나게 되는 시들도 있었다. 늘 따스했지만 아픈 마음에 젊은 기운에 간혹 반감이 들고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라는 마음이 슬며시 들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 읽어 보면 글자가 아니라 시인의 목소리가 직접 전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비로소 공감하는 부분이 생기기도 했다. 이 수많은 오독과 저항과 수용의 반복 속에서도 나는 늘 정호승 시인의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만은 잃지 않았다. 사랑과 연민이 가득하다. 실내 온도와 상관없이 간혹 한기가 드는 삶에서 그것이 참 큰 위안이다.

 

 


당신을 찾아서 정호승

 

 

잘린 내 머리를 두 손에 받쳐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

당신을 향해

잘린 머리를 들고 다닌 성인들처럼

걸어가다가 쓰러진다

따스하다

그래도 봄은 왔구나

먼 산에 꽃은 또 피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진달래를 물고 나는 새들에게 있는가

어떤 성인은 들고 가던 자기 머리를

강물에 깨끗이 씻기도 했지만

나는 강가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영원히 쓰러져 잠이 든다

평생 당신을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나뒹구는 내 머리를

땅바닥에 그대로 두고

 

 

 

나는 지금까지 시를 통해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으나 과연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 시를 필요로 하고 영혼의 양식으로 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린 적은 없다.

 

이 시집은 불가해한 인간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두가지 요소, 즉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쓰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는 동안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내내 잊지 않았다. 비록 설화이지만 참수당한 자신의 머리를 두 손에 들고 걸어간 생드니 성인의 사랑과 고통 또한 잊지 않았다.

 

(…)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나의 또다른 나인 아내에게, 무엇보다도 나의 당신인 절대자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20년 1월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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