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똥
유은실 지음, 박세영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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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작가가 목도한 한 장면이 작가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새롭게 쓰게 했다. 「강아지똥」을 읽어 주던 부모가 아이에게 “똥도 이렇게 쓸모가 있는데 너는 공부를 못하니 똥보다 못하다.”라고 말했던 것. 작가는 ‘똥도 쓸모 있다.’라는 50년 전 가장 진보적인 메시지가 어른의 입맛에 맞춰 변질되어 이 시대 어린이들에게는 ‘쓸모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라는 메시지로 전해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자 하는 「강아지똥」의 참뜻을 더욱 잘 전하고자 『송아지똥』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한 시선과 삶에 대한 성찰이 권정생 선생의 문학 정신을 직접적으로 계승한다.”

 

이토록 차분하고 다정한 이야기.

 

이야기의 힘을 맹신하는 나로서도, 이런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나면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마음이 편안하고 포근하고 안정이 되는 효과를 바로 누리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유은실님의 그림은 바라볼수록 도저히 평면 그림 캐릭터일 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생동감과 생명력과 섬세함과 그리운 손길이 느껴진다. 한 장 한 장 감동적인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오래 전 권정생님의 [강아지똥]... 벌써 50여 년이 지났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하긴 우리 집에서도 3대째 각자의 추억이 있으니 그 세월이 맞긴 하다. 오랜만에 [강아지똥]을 읽고 깔깔거리던 꼬맹이들 기억도 다시 나고 [송아지똥]을 읽고 이번에 다 같이 첫 장부터 막 웃었던 기억이 보태져서 기쁘다.

 

예전엔 묶어서 생각을 정리해보진 못했는데, 이제 보니 [강아지똥]과 [송아지똥] 이야기는 모두 태어나고 살다 죽은 그 평생의 과정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길어야 한 계절을 사는 송아지똥이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멋지게 살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보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어려운 일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겨내기도 하고. 꼭! 반드시! 대의를 위해 희생을 하거나 훌륭한 일을 성취하지 않고도 서로가 존재만으로 귀하다는 생각을 품어주는 이야기. <태어난 모든 것은 귀하다>

 

리듬감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내가 길어야 한 계절을 살 수 있다는 걸.

내가 태어난 세상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내 짧은 똥생을 생각했다. 짧은 만큼 멋지게 살고 싶었다.

두 권을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죽고 난 후 남는 것은 귀하게 쓰일 것인지 쓰레기 더미일지... 생각이 길게 이어진다. 비 오는 일요일, 꼬맹이들과 한 자리에 모여 오늘까지의 우리들 ‘인생’에 대한 생각도 한번 정리해봐야겠다.

 

다음은 우리 집 꼬맹이들과 내가 한 장면씩 뽑은 인상적인 내용이다. 단지 인상적인 것만이 아니라 찬찬히 다시 읽을수록 무척 슬프고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송아지가 잡힌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도.

마음이 아팠다.

“잡혀가는 건 슬퍼.”

“똥또로롱, 그래도 도망쳐 봤잖아. 도망쳤으니까 잡힐 수도 있는 거야.”

리듬감이 말했다. 듣고 나니 위로가 되었다.

나를 낳아 준 송아지가 한 번은 도망쳐 본 거니까.

  

“...... 이 세상에서는 모두 서로 도와줘?

“음...... 모두 그러지는 않아.”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

“음......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나쁜 짓도 해.”

“그게 뭔데?”

“괴롭히는 거.”

 

<감나무가 존댓말을 거절하는 인상적인 장면> 존댓말은 나이가 어떻든 서로 존중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이상한 아이’나 ‘이상한 반려동물’이란 없고 실체는 ‘이상한 부모’나 ‘이상한 반려인간’만 있을 뿐이듯이, 존댓말과 반말에 대한 숙고는 이 책을 읽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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