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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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참 신기하다.

​그저 하늘의 상태일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이다니.”

 

영화 포스터와 책 표지가 똑같은 작품이 있었나.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정말 예쁘다.

 

속도감 있는 짧은 대사, 표정, 배경톤, 목소리톤, 감정톤, 리듬, 효과음, BGM 등의 모든 요소들이 사라지고 문자 그대로가 전달되는 스토리로서 남은 부분이 독자 각각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무엇보다 ‘맑음 소녀’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상상 능력이 필요하다. 대사들은 짧지만 섬세한 독자들은 충분히 대사 속에 감춰진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집중할수록 장면들이 상상 속에서 영상과 음향을 구비하고 아름답게 완성되는 유쾌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이 더 강한 인상을 주는 매체이긴 하지만, 영상을 본 유무가 원작소설을 즐겁게 경험하는 일에 아무런 제약도 조건도 되지 않는다. 사랑스럽고 순수하고 솔직한 소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가 가장 궁금했고 흔치 않아 감동적이고 경이로웠던 [날씨의 아이]이다.

 

-요컨대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정말 한심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자신의 한심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그 소년이 나타났다. 엄청나게 천진난만하고 무방비하게, 하나하나의 말과 사건, 풍경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감동하면서. 갑작스레 동아리 후배를 돌보라는 명령을 받은 듯한, 귀찮은 마음과 호기심, 약간의 뿌듯함. 나츠미 씨, 나츠미 씨! 지금도 바이크 뒤에 앉아 내 이름을 불러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런 기묘한 따뜻함과 새로운 뭔가가 시작된 것만 같은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바이크가 가르는 비 섞인 바람이 오랜만에 흔쾌했다. 67

 

“봐, 이제부터 맑아질 거야.”

“뭐?” 중략. 소녀가 살며시 빛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다. 옅은 빛이 소녀를 비추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소녀의 갈래머리를 훅 들어올렸다. 점차 빛이 강해졌다. 소녀의 피부와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났다. 설마. 91

 

히나 씨는 정말 즐거운 듯 깔깔대고 웃었다.

“너는 정말 진지하다니까.”

또 놀림당했다.

“그래서 고맙다고, 호다카.”

.쿵! 머리 위에서 소리가 나, 히나 씨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주 큰 빛의 꽃이 반짝이다가 흩어졌다.

“……아름답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옆얼굴에서 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날씨는 참 신기하다, 나는 생각했다. 그저 하늘의 상태일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이다니.

히나 씨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145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만의 감수성을 그대로 전해주는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현상과 풋풋한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아직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않는 주인공들, 그런 만큼 아직 완벽하게 성장하지 않은 그들은 그 나이에 찾아오는 성장통을 앓게 되고 그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자그마하고 아름답고 순수하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 호다카는 살고 있던 섬마을에서 빠져나와 무작정 도쿄로 향하며 배에 올라탄다. 특별한 목적이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사실은 그냥 가출한 것이어서 살짝 웃기네 하며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 행해 도중 배에서 위험한 상황에 우연찮은 도움을 받게 되고 그 남자 스가에게 호다카가 밥을 사면서 작은 규모의 편집 프로덕션 회사에 취직까지 하게 된다. 호다카의 업무 분야가 도시 괴담, 우주인설 같은 다소 황당한 주제들인데, 나름 취재를 해서 잡지를 만드는 일이라 그 와중에 ‘100% 맑음 소녀’에 대해 듣는다. ‘맑음 소녀’뿐 아니라 ‘비 소녀’도 있다는 취재 대상자의 말에 처음에는 어이없어 하지만 알고도 오락거리로 그런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배운 호다카는 마침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 준 소녀가 바로 그 실재하는 ‘맑음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상과 가까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그래서 좋은 한편, 이런 이야기들이야말로 영상 효과가 ‘무척이나 적절하게 효과적’일 거란 생각이 자꾸만 비집고 들어온다. 단, 이 대목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점은 맑은 날씨를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는 별도로 인간의 인내심과 생존능력은 별로 대단하지 않아서 삼일만 물을 못 마셔도 폭동이 일어나는데, 3년간 끊임없이 비가 내리는 환경이라면, 그리고 그 비를 그치게 할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내 희생이 아니라 타인의 희생이 필요한 경우라면, 품위와 품격과 이성과 도덕과 윤리는 증발하듯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옛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는 예화가 아니라는 점이 서글프고 두렵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화된 것을 축하하며 기뻐하며 본 순서가 아니라서인지, 이 작품에 대한 나의 독자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장면들보다 이미 습득한 애니메이션 장면들이 이렇게 저렇게 떠오르고 끼어들어 마치 원작이 애니메이션의 컬러북인 것 같은 전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혹은 책을 읽다가 일러스트레이션 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A가 B보다 낫네 못하네 이런 결론은 아니다. 그냥 다르다! 그리고 각각의 경험에서 받는 감상은 정서의 길이에 따라 단면적에 따라 경도에 따라 다른 모든 요건들에 따라 다를 것이다. 덕분에 몇 배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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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sis 2019-11-2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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