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작은 아씨들 - 누구보다 자유롭고 다채롭게, 삶의 주인공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서메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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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은 어느덧 출간되지 150년이 넘었고, 5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나는 어린 시절 문고판으로부터 쭉 끊이지 않고 다양한 출간본을 읽어 보다가, 올 해 여름 드디어 완역본을 읽게 되었다. 900쪽이 훌쩍 넘는 분량도 반가웠고, 잊어버렸는지 미처 몰랐는지 아직도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해서 여름의 막바지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네 자매를 연령별로 동일시하며 감정 이입한 것과 달리, 처음으로 원 저자에 대해 가장 상세히 알게 되었고, 저자의 삶과 선택과 가족 관계와 시대적 배경에 대해 소설 자체만큼이나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점이다. 간혹 자기고백이 강한 소설을 읽는 경우가 있는데, 작은 아씨들은 개인사와 사적 감수성에 더해 시대정신과 고민을 함께 이해할 수 있어서 이해와 인식의 폭이 한층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나와 작은 아씨들>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 드디어 수많은 독자들이 감정 이입한 세월을 글로 단정히 출판한 책이 나왔나보다 일단 반가웠고, 혹시 서평일까 에세이일까 몹시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여름에 완역본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오랜만에 감상평을 수다처럼 흥겹데 나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여, 장녀로서의 매그와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찾는 조와, 온화하지만 언제나 주변을 아우르는 베쓰와, 현실적인 한편 재능을 향해 용감히 나아가다 고단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유연히 모두 한 자리에 있어서, 새삼 작은 아씨들이 포용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상징과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제는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해도 꿈이 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서로에게 하지 않지만, ‘그 때 그 시절’의 사랑과 우정과 꿈을 다시 소환해서 미처 하지 못했던 위로와 칭찬을 건네는 일 또한 기쁘고 필요한 일이다.

 

또한 원작자의 삶과 선택을 존경하고 감탄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상황이 달라 네 자매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 해도 매끄러운 대화와 공감은 불가능할 것이란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없지는 않았는데, 번역가이자 작가인 서메리님의 소개를 읽어보니, 살짝 놀랄 만큼 공감가는 여정이 보여 더 친근감이 든다. 나와 친구들 중 몇몇 역시, 처음의 계획과는 다르게 자신을 거듭 발견하거나 이해하고 새로운 선택들을 하는 과정에서 불안감과 일종의 실패를 지칠 만큼 봤보았다. 연배는 어리지만, 서메리 작가가 그런 결정의 한 지점에서 이렇게 반가운 책을 출간하고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현재를 무조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나에게 <작은 아씨들>은 책표지를 들여다보는 짧은 순간에도 두근거리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보물처럼 아련하고 달콤한 선물이다. 그 행복감이 상상 속에서 커다란 대조를 이루어 그럴 때 늘 밖은 춥고 바람부는 한 겨울이고 나는 따끈한 실내에서 달콤한 간식을 앞에 두고 더 행복한 내일을 믿는 그런 장면이다. 그런 세월은 내가 마련하지 않으면 다시는 당연한 듯 주어지지 않겠지만, 그런 시절을 늘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펼쳐주는 책이 있다는 것은 크나 큰 기쁨이다.

 

올 해 크리스마스에 맞춰 개봉되는 <작은 아씨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초조하게 기다려진다. 원작에 충실해도 시대적 재해석이 진행되어도 어떤 식이라도 보는 내내 행복할 것이다.

 

여성이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투표권도 없던 그 시절에, 여성운동,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들이 전개되던 그 시절에 올콧 작가가 ‘조’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켜 오늘날까지 매 달 천 여권이이 넘게 읽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과 축복을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이 에세이를 읽었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장벽과 금지와 혐오와 차별이 생각보다 많고 단단하지만, 일상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을 마냥 하지 않겠다고 펑펑 울며 거부하면 되는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운이 좋아야 때론 가벼운 짐을 지는 일일뿐 아니라 대부분은 버거운 짐을 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심정이라면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고 길 수도 있겠지만...... 최초 출간된 1868년부터 오늘날까지 작가 서메리처럼 ‘조’는 수없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제는 <Little Women>을 <작은 아씨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에서 우리가 한발쯤은 더 나아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 시대적 배경으로도 이토록 강인하고 성숙한 네 자매을 아씨들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지금에 와서는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맘에 쏙 드는 대안이 없지만, 나는 반드시 재기발랄하고 생각 깊은 누군가가 언젠가 이 번역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다.

 

“벨이 그러는데, 가난한 여자는 적극적으로 남자를 잡지 않으면 가망이 없대.”

메그가 한숨을 폭 쉬며 말하자, 당찬 조가 씩씩하게 받아친다.

“그럼 우린 노처녀(Old maid)로 살면 되지!” 146

 

“먹고살려면 남자들은 일을 해야 하고, 여자들은 시집을 가야 하다니, 정말 끔찍하게 불공평한 세상이야.”

 

첫째 언니 메그가 신세 한탄을 할 때면, 에이미는 그 곁에서 밝은 목소리로 기운을 북돋워준다.

 

“걱정 마, 언니. 돈은 내가 벌어다 줄게.” 169-170

 

하지만 이상하게도, 네 자매의 행운은 이런 불편한 감정을 조금도 자아내지 않는다. 우리는 순수한 친구의(혹은 언니의, 동생의) 마음으로 그녀들의 기쁨을 공감하고, 오히려 그토록 커다란 선물을 안겨준 이들에게 내 일처럼 고마운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작은 아씨들에게 찾아온 행운이 단순한 요행이 아니라 그녀들 본인의 노력과 따뜻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로 이루어진 필연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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